의
인제로 떠나기 전, 여행 가방 하나와 배낭 하나에 최소한의 짐을 쌌는데도 이미 물건의 가짓수가 50개 정도 됐다. 그래도 옷은 최소한으로 챙겼고 외출복이 농사복과 등산복을 포함해 티 3개, 바지 3개면 두 달을 나는 데 충분했다. 집의 옷장을 가득 채운 옷 중 실제로 필수적인 옷은 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식
달뜨는마을에는 식당이 없었다. (2025년에는 마을에 카페가 생길 예정이다.) 마을에 있을 때는 보통 삼시세끼를 해먹고, 때로는 옆 마을이나 읍내에서 외식을 했다. 우리 숙소 옆에는 공동 주방과 식당이 있어 우리 ‘두 달 살아보기’ 참가자들은 밥을 같이 해먹기로 했다.
나 말고 다른 참가자분들은 요리 고수였다. 우리 모두 비건을 지향하고 유기농과 자연식물식을 선호해 서로 잘 맞았다. 우리 참가자들을 도와주고 ‘살아보기’ 프로그램 일부를 진행하시는 마을 멘토님도 요리왕이었다. 나는 걱정 없이 맛난 걸 실컷 얻어먹고 사과 깎기, 밥 짓기 등을 맡았다.
멘토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밭에서 자유롭게 수확해 먹으라고 하셨다. 밭에서 방금 딴 채소로 뚝딱 만들어내는 고수들의 요리는 무궁무진했다. 신선한 향이 나는 상추로는 새싹비빔밥을, 호박꽃으로는 전을, 호박으로는 강된장밥을 했다. 단호박찜, 들깨미역국, 비건 감자탕, 토마토오이샐러드는 물론이요, 마을 밖으로 나갈 때는 버섯야채 김밥이나 쌈밥 도시락을 싸가서 다 같이 맛있게 먹었다. 생기 넘치는 채소로 차리는 우리의 식탁은 풍성했다.
외신 기자들이 신월리 비건 마을 조성에 대해 취재 온 날에는 마을분들이 해주신 두부부침, 잡채, 호박전, 가지전, 고사리 등 갖은 나물을 비롯해, 떡메치기 해 갓 한 따끈한 인절미까지 채식 진수성찬을 함께 먹었다.
주
참가자들은 마을숙소의 방 한 칸씩을 썼다. 이 건물은 지열난방을 한다. 인제의 겨울은 춥다고 하는데, 난방을 따듯하게 해주셔서 내가 머문 10월과 11월엔 그리 춥지 않았다. 아래는 다른 참가자의 남편분 ㄱ 님이 마을숙소에서 하루 묵으신 뒤 나랑 나눈 대화.
ㄱ: 여기서 지내는 게 지루하지 않으세요?
나: 한순간도 지루한 적이 없어요.
ㄱ: 진짜요? 전 하루 있어도 심심한데. 늘 똑같은 데만 다니잖아요.
나: 늘 디테일이 다르니까요. 밭에 가도 그날그날 딸 수 있는 게 다르고.
ㄱ: 디테일이 보여요? 신기하다. 전 다 ‘초록’으로 보이는데.
나: 하하하.
같은 숙소에서 보는 하늘도 매 순간 다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니, 그 변화를 누리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저녁 6시면 이미 깜깜해, 보통 밤 9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