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와의 좋은 추억

by 춤추는 곰

초등학교를 다닐 때, 비가 오는 날인 줄 모르고 아침에 옷을 얇게 챙겨 입고 간 날이면 엄마는 겉옷을 챙겨 우산을 쓰고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오시곤 하셨다. 어떤 날은 엄마가 미처 정류장에 다 다르시기 전 내가 먼저 도착하여, 마을 중간 어귀에서 비를 피해 뛰고 있는 나와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으로 향하시는 엄마가 마주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어쩐지 더 추운 게 아니라 더 따뜻했다. 괜히 한층 더 반가운 마음까지 더해져서 그랬을까.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짙은 풀색의 체크무늬 점퍼는 두 겹으로 되어 있어 실제로도 쌀쌀함을 가려줄 만큼 따뜻했지만, 내가 빗속에서 그 옷을 건네받아 입을 때마다 느꼈던 건 그보다 훨씬 더 큰 엄마 마음의 온기였다.


이런 덕에 나는 옷이 얇은 날 비가 와 몸이 으슬으슬 해져도 조금도 싫지가 않았다. (사실 지금도 남편이 변온동물이냐 놀릴 만큼 추운 날이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쉽게 덜덜 떨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시절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서 계시던 젊은 시절의 엄마와 내게 건네주시던 그 옷이 생각난다.) 엄마의 마중이 기다려져서. 엄마 마음이 담긴 따뜻한 옷을 입을 생각에.


이제와 생각해 보니 숙제나 준비물은 까먹고 안 가져가도 절대 가져다주는 법이 없으시고, 늘 알아서 해결하라 하셨던 게 우리 부모님 교육 철칙 중 하나셨는데, 비 오는 날 그냥 집에 오게 두지 않으시는 건 앞서 말한 것들에서 오는 서운함 아닌 서운함-사실은 숙제나 준비물은 직접 챙기고 해결하는 것이 백번 옳은 말씀이지만- 을 씻어내고도 남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표현의 한 방법이셨나 보다.


엄마는 지금도 그렇다. 내 일을 나서서 대신 결정해 주시거나 크게 목소리를 높여 의견을 내시는 법은 결코 없지만,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챙겨 두고 내가 찾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신다. 작은 일 일지라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