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응원하는 두 사람을 생각하며 남겼던 기록
상사와 이야기를 했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봐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의를 차리느라 그랬을까 아님 “이미 정말 잘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팀과 연구소에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될 연구원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어려운 결심이었던 것만큼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해 보고 다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정리를 해 가고 있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분은 특히 새로운 자리로 가게 되거나 지금처럼 아주 자리를 떠날 때는 피할 수 없이 하게 된다. 매번 신경을 쓰느라고 쓰지만 돌이켜보면 결과는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열어보게 될지 모를 자잘한 자료들까지(정말 모를, 대부분의 경우엔 일어나지 않을 일) 어쩐지 조금 더 깔끔하게 구획화 해 놓지 못한 것에 대한 찜찜함이 남으면서 (이런 것은 주로 꼭 그 자리를 이미 떠난 직후 즈음에 생각이 나고) 마음 쓰여하게 된다던 지. 그렇지만 또 사실은 거기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상황에서 마음을 쓰고 고민했던 많은 것들이 다 흩어져버린다. 흐려져서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감정으로 뭉뚱그려진다. 어디서든 떠날 때 자리를 정리하고 마무리를 잘 짓는 것은 중요한 일임이 분명할 것 같은데, 너무 많이 고민하고 머리 아프게 생각할 만큼은 아니라는 뜻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신경을 써서 정리를 하려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시간도 그만큼 많이 쓰게 될 것 같다.
쉬어 가는 게 좋겠다는 부드러운 말에서 시작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꾸준한 설득에 또 몇 달, 급기야 지난 두어 달 동안 두 사람 모두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나를 설득했다.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느라 잦은 반차를 썼고, 그런 중에도 건강은 더 나빠지기만 하여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두 사람 모두 반복해서 왜 지금 내가 일을 지속하지 않아야 하는지 수많은 이유들을 이야기해 주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건강에 집중하는 것이 왜 걱정할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인지도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지거나 -보통은 이것이 어렵다. - 실제로 일어나 버리기 전까지는 없어지기가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큰 결심을 마침내 하기까지 지난한 과정 동안 두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으며 나의 건강 악화와 그로 인한 내 마음의 힘듦을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내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도 너도, 복잡한 생각들을 꼭 껴안고 그 속에서 버텨내고 있는 나를, 곁에서 붙잡고 기댈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퇴사를 하고 이제 거의 3년이 다 되어간다. 후회하지 않는다. 과학자로, 연구하며 사는 삶이란 길이 막혀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있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건강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런 면에서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지만, 감사하게도 요즘의 나는 적어도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 것 같다. 감사하다.
03/15/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