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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두 번째라고 처음보다 쉬운 것은 아니다.

by 춤추는 곰

낮건 높건 오르막길을 지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물론 요즘 꽤 높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사실 이번엔 계단식으로 오를까, 오르지 말고 굴을 뚫어 지나갈까, 헬기가 와 태워가도록 둘까, 완만하게 빙빙 산을 돌듯이 둘러갈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 쌓여 내 뜻은 아니지만 숨 고르기 중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동네를 산책했다. 무섭도록 가파를 오르막 코스가 있는-언제나 나를 헥헥거리게 만드는-. 그날은 그런데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쉬지 않고 한 번에 오를 수 있었다. 두 번째 날과 세 번째 날은 기대와 달리 한 번에 오르기는커녕 몇 번이나 중간에 쉬어가야 했고, 속도도 느려지고 체력도 더 떨어짐을 느꼈다. 더 쉬울 줄 알았는데 왜 점점 더 어려워지던지.


오르막길은 여러 번 오른다고 쉬워지는 게 아닌 거다. 그거다.


아주 어린 시절, 다복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IMF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우리 집은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 후로도 끊긴 적 없이 고수익의 직장에 다니셨고-아빠의 노력과 책임감도 대단하셨지만 어린 난 S대가 이래서 중요하구나 생각했을 정도-, 나중에는 사업도 하셨지만 이미 생긴 큰 빚을 감당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빌린 돈을 어떻게든 법적 절차를 거쳐 마무리를 하고, 얼마간 은퇴 자금을 모으느라 또 일을 계속하시다가 몸도 마음도 상해가던 아빠를 보며 상의 끝에 부모님은 아빠의 은퇴를 결정하셨다. 그래서 두 분은 조금 일찍 은퇴하셔서 지금은 강원도에 사신다.


엄마는 경제적 어려움이 오빠와 나에게 다른 상처나 결핍으로 남지 않도록 당신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셨고, 아빠는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다 짊어지셨다. 그리고 오빠는 일찍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엄마 아빠를 돕는 것은 물론 나까지 마음을 담아 챙겨준다. 이 또한 쉽게 낼 수 있는 마음이 아니거늘.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다.


엄마 아빠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오르막길이 있었을까. 오빠와 나까지 데리고 힘을 몇 배 들여 오르려니 때로는 버겁지 않으셨을까. 얼마나 포기하고 싶고 무서운 순간이 많으셨을까. 두 번 세 번이 되어도 쉽지 않았을 다양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무사히 걸어와 주신 것에 감사하다. 오늘은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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