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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에 대하여

엄마와의 대화

by 춤추는 곰

엄마는 요즘 나이 듦에 대한 글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다. 원래 책을 읽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고 사시는 분이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글들을 일상 속에서 접하고, 담고, 기억하시지만, 요즘의 큰 화두는 어떻게 하면 잘 늙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랄까. 아마도 당신께서 직접 겪어가고 계시는 일이니, 오빠와 나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최대한 스스로 잘 준비하며 살아내고 싶으신 것 같다. 엄마답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이랬다.


"엄마, 나중에 우리 예쁜 조카가 조금 커서 고모는 뭐 해?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때쯤엔 내가 무언가 하고 있을까?"


"고모는 글도 쓰고, 논문도 읽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조금 도와주기도 하면서 산다고 하면 되지."


"맞아. 나 요즘 곰돌이 도와줄 때 논문 공부 많이 해.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나 박사 공부 진짜 열심히 했는데, 지금 그걸로 아무것도 안 하잖아. 의미 있는 일이었을까?”


"그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야. 혼자 외지에서 어려운 학위 공부 마쳤다는 그 자체로 대단한 거고. 엄마는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예전엔 ‘나이 든 사람들 뭐 할 일이 있나. 밥이나 먹고 하는 것 밖에는‘이란 생각까지 했었는데. 요즘엔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대로 사는 것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 너도 아픈 거 이만큼 이겨내고 있는 그 자체가 대단한 거고, 아픈 사람들은 모두 아픈 거 이겨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야."


고마워 엄마. 요즘 브런치에서도 가족들에게도 응원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나한테 의미가 있는 것 이상으로 엄마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게 나한테 큰 힘이 돼. 요전날 입술이 잔뜩 부르터 있는 엄마를 보니까 너무 속상하더라.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누가 뭘 해주지 않아도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잘 뭐든지 찾아서 성실하고, 곧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딨다고…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마음이 몸을 어느 정고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또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을 감정은 헤아리기도 힘들다. 내가 더 많이 신경 쓸게. 예전에 엄마가 했던 말처럼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지만,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받은 만큼 돌려주려면 너무나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엄마 입장을 생각하고 전화라도 한번 더 하는 딸이 될게. 나이가 든다는 게 이것저것 난 어렵기만 한데, 엄마에게 조금 더 힘이 되는 딸이 되는 건 어쩐지 설레는 목표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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