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장대

내 것은 생겼는데, 엄마는 화장대가 없었다.

by 춤추는 곰

엄마의 화장대.



나는 서른이 흘쩍 넘었고 더 이상 어리기만 한 사람들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자유와 책임은 물론 거칠음까지 있는 어른의 세상에 완전히 발을 들이게 된 후에야 비로소 엄마의 30대가 예고도 없이 불쑥 가슴속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


그날은 고심하던 화장대를 산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영상 통화로 보여드렸다. 그때는 물론 '예쁘다., 잘 샀네., 그래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중요한 거야.' 등등 주로 엄마나 남편이 내가 뭔가를 사면 하는 말들을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눈치 없게 '그래. 내가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해서 산 가구. 두 사람이 잘했다고 해주니 기분이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다.


영상 통화뿐 아니라 종종 가서 잘 지내시는지 살피고 또 남편과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보여드리곤 한다. 새 화장대에 관한 통화 후 2-3주쯤 지나 찾아뵙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엄마는 30대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제대로 된 화장대 없이 지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화장품을 놓고 쓰시는 곳에는 의자도 하나 없다는 사실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내 것을 사면서 한 번이라도 엄마를 떠올렸더라면 좋았을걸. 그게 참 마음이 아리고 후회가 되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물건을 간소화하여 살기를 원하신다. 예전부터 그러셨지만, 요즘은 더더욱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점점 줄여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해 드린다고 해도 거절하셨겠지만 그래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 죄송했다.


이런 건 화장대 말고도 무수히 많겠지. 언제쯤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미리 알고 공감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이 아니구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 지내는 것 그리고 가치 있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