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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라는 꿈을 찾게 된 그 밤

23살 꿈을 찾아 제주도로 떠나다 2편

어쩌면 내가 춤을 춰야겠다는 꿈을 찾게 된 계기는

꽤나 신비로웠다.


현실은 환상적인 영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때때로 그런 환상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슈를 만난 게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인생에 그런 순간을 꼽으라면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신비로웠던 순간.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그 때의 그 신비로운 감성이

살아 숨쉬어 내 심장을 파르르 떨게 한다.


슈는 내가 참석하게 된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줄여서 사하라)

진로찾기 캠프에 스텝으로 참여한 언니였다.


나흘 밤이 지나고서도 나는 내 꿈을 찾지 못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늘상 그렇듯 혼자 생각에 빠졌고,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꾸만 나를 혼자 있고 싶게 했다.

배탈이 난채 저녁식사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숙소에 들어와있는 나에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슈는 문득 말을 건넸다.


"수덕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놀랐어."

"네? 왜요?"

"내가 늦게 와서 첫날 밤 먼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앉아있는데 참가하는 친구들이

한명 한명 들어오는 걸 봤어. 근데 어떤 작은 여자아이한테서 파아아아!!!! 하고 빛이 나는 거야.

가슴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더라구. 나중에 이름을 알고 보니 수덕이었어."

"저한테서요?"

"응, 나도 너무 놀라서 참 이상하다.. 잘못봤나? 싶었는데 다음날 오전에 워크숍 시작 전에 먼저

강의실에 와서 앉아 친구들이 한명 한명 들어오는 걸 보는데 같은 아이한테서 똑같은

에너지가 느껴졌어. 그 아이가 들어오는데 또 가슴에서 파아아아!!! 하고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게"

"....."

"우리 같은 숙소를 쓰잖아. 밤에 하루 일정을 마치고 들어오면 수덕이 뭔가 아라비안?

이집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을 것 같만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어..

전생에 술탄 왕국의 무희가 아니었을까?"




그날 밤 슈와의 대화를 한마디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본모습을 알아봐준 듯한 말.

진짜 내가 찾고 싶고 듣고 싶은 내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준 말.


자기 전, 마지막 프로그램인 하루 나누기를 하기위해 모인 자리에서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아주 간혹 가슴속에서 열망이 올라와도 창피하고 부끄러워

차마 끄집어내지 못했던 말..

"저 춤추고 싶어요. 춤꾼이 되고 싶어요.."

처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실낫같은 목소리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 일을 얘기했을 때,

비웃을까봐 얼굴도 못 들고 잔뜩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일순간 "오~~"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오며

"수덕이와 잘 어울려! 춤추면 정말 멋질 것 같아" 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나의 꿈이 환영받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나의 시작은 그랬다.

정말 희미하고 나약했던 내가 그 순간 비난을 받았다면

난 아마 지금 춤을 추고 있지 못했으리라.

혹은 춤을 시작할 기회가 또 한번 멀리 달아나 더 늦게 더 자신없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리라.

십대때 나에게 여러번 왔었던 그 신호를 가난의식과 '이미늦었다'는 판단분별로

늘상 놓치고 살다 켜켜히 덮혀있던 두려움을 어렵사리 걷어낸 것이다.

날 공감해주고 따스히 감싸주는 에너지 속에서 겨우겨우 끄집어 올린 자존감.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나로 존중받았던 그 밤. 그게 내가 평생 춤을 춰야겠다 결심한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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