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인들은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먹고살까?

인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 무용예술인의 외침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돈이야? 예술이야?'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얘기하면 동료들은 내게 이렇게 되묻곤 한다.

한국의 예술가들이(어쩌면 세계 곳곳의 예술가들 또한) 잘 빠지는 병이 있다. 예술가는 무릇 숭고한 작업을 하기에 돈을 떠나 사는 것이며,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은 예술가는 상업 예술가이거나, 예술가이길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순수예술병에 빠지는 것.

23살, 춤이란 꿈을 찾고 혼자 시골에서 상경해 생계 벌이, 교육비 벌이 혼자 다 하면서 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연명(!)해온 사람으로서 누가 뭐래도 난.. 가난한 예술가로는 살고 싶지 않다.




네모진 턱에 살짝 위로 찢어진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앙 다문채 나를 보던 그녀 특유의 못마땅한 표정.

“너 참 대단하다.”

“대단? 까진 아닌 것 같은데요 단장님..”

“대담! 대담하다고.”

SNS 콘텐츠 제작과 현대무용을 다 하겠다는 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하신다. 6월 30일 1년 반을 함께한 무용단을 나올 때 내가 마주한 스승의 모습이다. 한 때는 엄마처럼 따랐고, 존경했고, 사랑했던 사람. 모든 고민과 눈물을 나눴던 나의 스승과 헤어지는 순간은 그랬다. 화도 나고, 속상한 표정을 숨기려 애쓰느라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솔직히 스승님의 부유한 남편분. 그 뒷받침이 없었다면 이렇게 매달 적자인 무용단을 운영할 수 있었을까? 나만큼이나 가난해보셨다면 이렇게 무용에만 오롯이 올인하는 것과 아닌 것을 예술가, 일반인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었을까? 마음속 생각들이 메아리쳤지만 절대 표 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배경이 없었다 해도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택했을 수 있다. 그건 성향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니기에 감히 함부로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분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녀는 1년 반 동안 내 처지를 고려해 교육비를 적게 받은 스승이었고, 난 그랬기에 큰 부담 없이 교육비를 지불할 수 있어 감사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지게 된 갈등의 발단은 1월이었다.


대단한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 돈 벌어보겠다일 벌리고 가족들 돈까지 까먹고 있는 엄마. 착해 빠져서 아빠 보호자 노릇에 엄마한테 돈 빌려주고 스트레스받아 매일 울며 엄마와 싸우는 언니. 그런 가족 사이에 아등바등 내 갈 길 가겠다는 이기적인 나. 하고 싶은 일은 하필 춤이라 드는 돈은 많고, 체력도 부족한데 겨우겨우 알바로 버는 돈은 쥐꼬리였다. 그래서 올해 1월에 시작한 게 SNS 콘텐츠 제작이었다. 정말 대담하게도 통장에 50만 원도 없는 내가 6배가 넘는 금액의 교육비를 10개월 할부로 긁고 SNS 컨설팅을 들으면서부터 단장님과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춤에만 올인할 체력이 부족해졌고, 당연히 욕심만큼 금세 돈이 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난 이미 형편 이상의 거금을 내놓은 상태고, 예술가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틀을 깨고 싶었다.


“네가 처음 무용단에 왔을 때는 이런 애가 아니었어. 춤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는 애였어. 난 그런 네가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고 나이와 상관없이 오직 춤에만 올인한다면 전문 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렸지. 춤추고 예술하려면 돈을 생각하면 안 돼. 몸과 마음 정성을 다 여기에만 쏟아야 하는 거야. 그럼 돈은 나중에 따라오는 거지 돈이 있어야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처럼 부상 때문에 단순노동 알바를 하기 어려운 무용 전공생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

“무용에 미련 남기지 말고, 요가강사나 재활치료사가 되던지.”

“... 하지만 저는 평생 춤을 추고 싶어요. 그럼 제가 몸에 무리되지 않게 노동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통해서 수단을 마련해볼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내가 돈을 조금 받잖아. 그냥 춤에만 올인할 수 있게. 편의점 알바를 하던지 단순노동을 하면서 춤에 올인하는 게 대단한 거지. 다른 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예술을 안 하겠다 라는 거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인생의 색깔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너무 다른 세대를 사는 사람이었다. 난 그저 어깨를 움츠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40년 춤만 바라보고 살아온 이 앞에서 내가 그녀의 생각을 바꾸겠다고 설득할 수도, 내가 그 길을 똑같이 따라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로의 방향성이 멀어졌기에 결국 내가 떠나야만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무용단을 나온 후 한동안은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이 길이 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무용예술계가 갖는 현실적 수요는 너무나 협소하다. 배울 땐 큰돈을 들여 입시 준비도 하고, 비싼 학비를 내가며 무용과를 졸업해도 전문 무용수가 되어봤자 버는 돈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무대에 설 공연 비용은 애초에 자비로 부담할 수 없어 국가 지원금을 타며 내가 하고 싶은 공연보단 지원금 타기 좋은 보고서를 작성해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


아주 이름 날리는 무용수만 명 중에 1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도 티켓파워가 있어 돈이 벌리겠지만 그 0.01%를 제외하곤 모든 무용수들의 수입원은 정말 입시강사, 국가 지원금에 의존하는 공연 무용수 달랑 2개뿐이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순수예술을 기반한 SNS 콘텐츠 제작은 어떨까? 온라인 시장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충분한 수입원의 가능성이 보여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견딜 수 없을 때에 이르러 무리한 교육비를 질러버린 것이다.


그렇게 SNS 마케팅을 배운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난 이 시기에 더더욱 무용인들이 신문명(?)에 눈을 떠서 적극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보게 된 태도는 너무나 안일했다. 무용예술인들은 항상 만나서 공연도 하고 수업도 했기에 모든 것이 대면으로 이뤄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비대면 상황에 수입원이 뚝 끊겼는데도 그저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며 주변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친구들을 보곤 한다. 당연히 이 상황은 언젠가 끝나야 하지만 더 이상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술 가니까 빨리 예술활동을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나는 예술가로 살아야 하니 예술에 관한 일만 해야 해!’ 그런 조급하거나 비좁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려놔야 하는 시기 아닐까? 정말 예술가로 살아남고 싶고, 더 이상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이 기회에 더더욱 여러 방향을 생각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안타깝게도 20대의 젊은 무용예술인들조차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몇몇은 아직도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 편하게 예술하고 싶다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건 우리 엄마세대 무용수들에게 통용되던 건데..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봐도 그렇다.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지독하게 힘들어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조금이나마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려 노력하지 않았겠지. 간절한 마음도 없었겠지. 그러나 언젠가 (돈 많은 배우자나 가족이 없는) 모든 예술인들이 당면할 문제인 경제적 홀로서기를 이 참에 제대로 직면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코로나 시기에, 예술 활동들이 좌절되는 시기에 더더욱 다양하게 소득을 지속할 방법을 많은 무용예술인들과 머리 맞대고 나눠보고 싶다.(아.. 머리 맞대면 안 되는구나) 어떻게든 이 춤이라는 아름다운 예술분야가 인 코로나 시대를 잘 뚫고 나갈 수 있길. 나부터 많이 고민하고 시도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