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 속 그 장면이 내 눈앞에..
물때 : 7물, 만조 시간 09:49(303), 간조 시간 16:07
1회차 다이빙 입수 시간 : 10:20
- 조류 거의 없음, 정조
2회차 다이빙 입수 시간 : 11:40
- 조류 조금씩 흐르기 시작
기온은 많이 떨어졌지만, 바람도 거의 없고 전체적으로 잔잔했던 바다
오늘도 평소처럼 바다로.
시야는 그냥 평범한 정도
평상시와 같은 일상적인 다이빙을 마친 후 안전 정지를 하던 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무언가.
안전 정지하며 멍하니 벽을 응시하고 있던 내 눈에 뭔가가 움찔움찔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다.
처음엔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니 그쪽에 평소보다 사이즈가 큰 놀래미 3마리(20cm는 넘어 보였다)가
이리저리 맴돌며 뭔가를 쪼아대고 있었고, 굴속엔 조개 비슷한 것이 보이는 듯했다.
움찔거리는 움직임과 물고기의 움직임으로 미루어보았을 때는 왠지 문어일 것만 같았는데,
문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개 아니면 소라게였나 보다 생각하며 약간 김이 빠진 상태로
조금 더 살펴보려 가까이 접근했는데,
문제는 아무리 살펴봐도 이 생명체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
조개껍데기가 있긴 한데 다 죽은 껍질뿐이었고 뭔 이끼를 뒤집어쓴듯한 상태로
들썩들썩 숨 쉬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나 완벽한 위장이었다. 정말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게 뭐지 생각하며 더 가까이 접근해 가만히 살펴보니
저기 아주 조그맣게 문어의 노란 눈 한쪽이 보이고
조개껍데기 사이 아주 작은 틈 사이로 문어의 빨판이 보이는 거 아닌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아, 이게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던 그 장면이구나..!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야 조개껍데기와 이끼로 몸을 감싸고 물고기의 공격으로부터 굴을 지키고 있는 문어가 보였다.
이 장면을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처음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 이 장면을 찾으려고 100일 가까이 되는 시간을 바다로 나갔었다.
당시엔 다이빙을 이렇게 자주 나갈 수는 없던 상황이어서
스노클링 장비만 챙기고 스킨다이빙으로 매일 문어를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그 장면.
바로 그 장면이 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건 대박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내 주머니에 고프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쁜 마음에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고프로를 꺼내들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어 이 귀중한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문어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서 촬영을 하던 중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어 고프로 전원 버튼을 다시 한번 눌러봤다.
그랬더니 웬걸... SD카드가 없습니다...
하... 진짜 한숨이 나왔다
이틀 전 다이빙 다녀온 후에 다시 꼽아놓는 걸 깜빡했나 보다.
이럴 수가... 이 장면을 놓치다니...
고프로를 안 가져온 것도 아니고, 가져왔는데 못 찍는다니...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예정된 다이빙을 마친 후 집에 빠르게 돌아가 메모리카드를 꼽고 다시 올 계획을 세웠다.
제발 문어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주길 바라며..
출수 후 아쉬운 마음에 20분의 짧은 수면 휴식 후 다시 물에 뛰어들었다.
정확히 문어가 있던 수심 5.8m의 그 자리로. 최대한 빨리.
하지만 야속한 문어는 그 자리를 이미 피하고 없었다.
돌아온 자리엔 문어가 방어할 때 사용했던 홍합 껍데기와 텅 빈 굴 뿐이었다.
물고기의 공격에 인간의 관심까지.. 아마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하.... 젠장...
아직도 그 여운과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그 장면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과 메모리카드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았을 때의 안타까움과 화남...
정말 다큐 속 그 장면이었는데ㅠ
너무너무 아쉽다.
다시 한번 느끼는 메모리카드와 장비 체크의 중요성
오늘의 교훈
아무리 사소한 장비라도 반드시 한번 더 체크하자.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땐 반드시 잡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