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블로프 Oct 18. 2020

영문학은 무엇인가

내가 배우고자 하는 학문에 대한 사색

 내가 영어라는 언어를 처음 맞이한 것은 할머니 댁의 구형 텔레비전에서 송출되는 Cartoon Network(워너 미디어의 자회사인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에서 운영하는 미국의 케이블 및 위성 텔레비전 채널)를 보면서부터였다. 어머니는 내가 그것을 무슨 뜻을 알고 보는 양 받아들였고 뒤이어 내게 온갖 파닉스 교재들을 내밀었다. 영어 레고 웹사이트를 완전히 해독해 내면 10만 원짜리 레고를 사주겠다고, 그리고 영어로 일기를 쓰면 3000원씩 용돈으로 주겠다고 유혹했다. 물론 지금 와서 그걸 성공시켜 대가를 요구한다면, 돈 대신 꿀밤이 날아올 테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언어에 내가 매력을 느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모국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영어라는 환경에 노출이 된 덕에 지금도 내 뇌에는 수많은 영어 활자들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닌다. 12살 때 동탄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주변에 미군들이 즐비한 평택에 살았고, 7살 때부터 6년 동안 영국 유학생으로부터 전화 영어 수업을 받았다. 그 결과 현재 내 영어 악센트는 영국의 그것이 어느 정도 섞여있다. 완연한 코크니 발음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영어는 그저 입시과목이 되었다. 더 이상 달과 루이스의 숨결을 듣는 일은 없었다. 내게 주어진 것은 그저 창백한 문법 체계와 유치한 단문들 뿐이었다. 자각이 있었다면 차라리 도서관에라도 가서 영어 소설들을 살펴보기라도 했을 텐데 사춘기와 당시 유행하던 롤이 겹쳐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다. 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즈음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토익을 공부했다는 점이다. 어쌔신 크리드나 스카이림 등에 빠져 사며 이따금씩 등장인물들의 말을 번역하는 것을 '영어 공부'랍시고 했다. 그래도 말하는 것은 잊어먹지 않기 위해 미국 명연사들 (레이건, 케네디 등)의 연설을 따라 읽곤 했는데 내 발음에 미국식의 뭉개지는 억양이 섞인 것은 그 때문이다. 여하튼 어렸을 적의 훈련 덕에 문법에는 취약했으나 영어 성적은 줄곧 잘 받아왔다. 예외가 있다면 중학교 때인데, 지금 와서 이를 논하는 것이 딱히 실효성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영어라는 언어는 이후 내 자존심이 되었다. 스무 살 이후 내게 그것 빼고는 내세울 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변에는 이미 나보다 더욱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또한 흠결 없는 일본어를 구사하고 컴퓨터 언어까지 능숙하게 사용했다. 대학에 와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우물 안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내 영어 실력만 가지고는 강의 일자리 하나 구하기 어려웠고, 나 자신에게도 영어를 제외하면 딱히 특출 난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키우겠다고 잠깐 헬스도 했으나 이내 싫증이 나 그만두었고, 전공인 회계는 정말이지 혐오스러운 과목이었다. 돈을 관리한다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빈틈없고 엄격한 이미지가 내게 도저히 맞지 않을뿐더러, 회계라는 학문 체계 자체도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로 나는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몰랐고, 전공은 그저 이름뿐이었다. 회계를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회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그러나 뻔뻔하게도 한국에 돌아오면 나는 인문학 전공자들을 '미래 백수'라고 놀리고는 했다. 회계가 그래도 어느 기업 조직에서든 필요로 하는 기능인 반면 영문학은, 영어는 그야말로 기초 교양으로서 그것만으로 먹고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대학이라는 서울대를 나와도 그렇다. 혹자는 서울대 나온 사람을 실제로 봤느냐고 얘기할 텐데, 나는 그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30이 돼서 겨우 취업한 사례를 본 바 있다. 이런 관점을 통해 나는 영문학이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한심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큰 오해이다.


 부정적인 얘기는 이쯤 해두도록 하자. 이제 내가 영문학이라는 과목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설명해야겠다. 2학년의 마지막 학기 때 나는 제인 오스틴 강의를 들었고, 그것은 대학에 설치된 몇 안 되는 문학 강의였다. 수업 내용은 단순했다. 그저 제인 오스틴의 글을 읽는 것이 다였다. 단 내게는 번역본이 없었다. 나는 이를 원문으로 읽어야 했고 그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형용사들과 명사들이 내 머리를 때렸으며 대부분은 단순히 어휘 부족이 아니라 뉘앙스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에 괴로웠다.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은 바이런과 워즈워스의 시였다.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교수님은 그들의 시를 짤막히 강의하고는 했는데, 이는 18세기 영국이라는 낯선 배경과 상황에 적응하고 무엇보다 그 복잡한 단어들을 덜 메스꺼운 형태로 맞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결국 강의가 끝나갈 1월 무렵 나는 그녀의 마지막 소설, Sanditon까지 읽을 수 있었고 이런 고통스러운 훈련 덕분에 나는 모든 책들을 읽을 참을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문학을 시작하는 데에 단초가 되었을지언정, 나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영문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나는 대학으로부터 쫓겨났다. 정확히 말하면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일본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한 것이다. 나는 일본 대학을 떠나 편입을 결심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회계나 경영과로 편입하겠다는 전의 결심과는 달리, 나는 영문과로의 길도 열어두고 있다. 더 높은 대학에 가겠다는 속물주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경영이라는 학문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편입시험 준비와 경영학 공부를 뒤로 젖혀두고 책만 읽었기 때문이다. 소네치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마약처럼 책을 읽었다'. 할 일 없는 자들에게 남은 것은 책뿐이라지만, 여하튼 그 덕분에 나는 글 실력이 늘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생각도 못한 사이에 편입 시험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논술 과목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2년 동안 쓰지 않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고3 때보다 더욱 완성된 글을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보게 된 것은 단지 글자뿐이 아니었고, 얻은 것은 글 실력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영문학을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 나는 수원을 갔고, 서점에서 영문학 입문과,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라는 책을 샀다. 꽤나 두꺼운 책들이고, 내가 처음으로 영문학을 접하도록 도와준 책이다. 나는 영문학 입문이라는 교과서를 하루 만에 독파할 수 있었고, 그것이 대학 시절 들었던 '언어의 역사'강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는 점에 대해 놀랐다. 이와 동시에 나는 영문학 입문이라는 책이 영문학의 본질을 담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는 책의 서두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내용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현재 영문학에 대해 내리고 있는 정의는 이 책이 기호로서 밝혀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영문학을 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은 말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대개 영문학 공부나 연구를 하는 것이지, 창조적인 문화 예술로서의 영문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예술로서의 영문학이 성황리에 수입, 유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학문으로서의 영문학 공부나 연구도 이에 못지않게 성황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이를 부정함으로써 영문학의 정의를 말하고 싶다.


영문학이란 영어로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습자가 언어를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주체적으로 구사하며 타인들과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학문이라 할 것이다. 그리 하여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여 영문학 공부나 연구'만'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 대학의 정의는 틀렸고 나는 창조적인 문화 예술로서의 영문학을 할 것이다. 내가 영문학과에 지원하게 된다고 하면 그것은 한국 대학교육이 지금껏 영문학이라고 정의 내려온 허위에 대한 도전일 것이며 그와 동시에 '영문학을 하는' 주체로서 우뚝 서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 쉽게 말해 영문학은 타인과의 공감을 창조하는 형식이다. 설령 대학 교육이 '너는 한국인이라서 영문학을 공부만 할 수 있어'라고 하더라도 나는 당당하게 '아니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나보코프와, 폴란드어가 모국어인 조셉 콘라드, 그리고 중국어가 모국어인 린위탕은 영문학에 있어 창조적 주체로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니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해서 어찌 '영문학 공부'에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앞서 언급한 제인 오스틴 강의로 다시 돌아가 보자. 비록 내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다 읽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선택 과제이자 기말 시험을 대체할 수 있었던 '제인 오스틴 평론'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막연하게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고, 막상 그녀에 대해 글을 쓰자니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경영학이나 마케팅 강의에서 성공적인 경영 사례나,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는 것과는 다른 글이었다. 그러나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대해 평론을 써낼 수 있었던 지금 나는 그 선택 과제를 끝마치고 싶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학의 영문학도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이다. 지난날 경영과 회계 같은, 위장에 맞지 않는 과목들에 둘러싸여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나 자신과 대상과의 관계에만 집중한 채 '제인 오스틴'에 대해, '제인 오스틴'을 쓰고 싶다.


영문학의 주체적 수용 자세란 영문학에 친밀감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되, 그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의 주체적 시각에서 그 실상을 바로 보고 그 경기를 바로 파악하고자 하는 올곧은 태도일 것이다.

우용 출판사, 영문학 입문


이 주체적인 수용 자세를 넘어, 나는 나 자신에게 던져진 근본적인 문제를 풀고자 한다. 바로 취업이 어떻고, 실용성이 어떻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영어라는 외국어, 그러나 나에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곁에 있어준 언어로서 타인과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라는 책이다. 이것을 읽고 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IQ84를 읽을 것이며, 내일은 Anne of Green Gables 시리즈를 읽을 것이고, 도서관에 방문하여 어린 시절 읽지 못했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도 읽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더 많은 영어 책들을 접하게 될 것이고, 어느덧 내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되리라 믿는다. 그때까지 나는 가만히 책을 읽고 싶다. 언젠가 타오를 불길을 지피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땔감을 준비하는 목수이고 싶다.


 내게 있어 영문학은, 나를 담기 위한 그릇이다.



작가의 이전글 1. 크로이체르 소나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