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에는 여러 아이들이 존재한다. 외모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제각기 다르다. 아이들은 인생의 첫 발자국을 떼는 교실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공교육의 교육과정에 맞는 교과목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범교과를 배운다. 교사인 나도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사람과 즐겁게 어울려 사는 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지만, 배울 수 있다.
수업시간을 따분해하지만, 그래도 학습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느린 학습자, 즉 '경계선 지능'으로 추측되는 아이들이 여지없이 일정한 비율로 교실에 존재한다. 단연코, 담임을 맡는 해에는 그런 아이들이 한 반에 꼭, 두세 명씩 있다.
5학년 혜린이는 정말 바르고 착한 어린이였다. 겉보기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지극히 평범했다.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도 잘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인 분리수거 담당도 매주 잊지 않고 했다. 지각도 안 하고 숙제도 빠짐없이 해오는 성실한 아이였다.
다만 한 가지, 3월 초에 본 국어와 수학 복습평가 점수가 40점, 30점이었다. 형식적으로 보는 쉬운 시험이라 다른 아이들이 80점에서 100점 사이의 점수를 받은 것과 달리 점수가 유난히 낮았다. 혜린이의 문제지에는 누가 봐도 비껴가라고 적혀 있는 선지들에 당당히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었다. 더욱이 수학 주관식은 아무 숫자나 대충 적어놓은 티가 물씬 느껴졌다. 기분이 묘했지만, 시험 한 개로 아이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 일단 수업시간에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4월 초, 혜린이가 국어시간에 쓴 '주장하는 글쓰기'의 내용을 보고 깨달았다. 이 아이는 학습을 하는 인지 기능 자체가 남들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아이였다. 문장의 낱말 배열이 하나도 맞지 않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도통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이었다.
[동물원은 있어야 됐다. 멸종동물은 불쌍합니다. 왜냐면 사람이 괴롭힌다. 사람은 나쁘다. 동물원 동물들이 불쌍하기 때문이다]
띄어쓰기, 맞춤법을 제외하고 이렇게 통째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게 쓰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이 아이는 특수학급이 아닌 일반학급에서 지내온 아이가 아닌가. 혜린이를 불러 문장을 한 번 읽어보라고 시켰다.
"혜린아, 이거 문장 읽어볼래?"
"동물원은 있어야됐... 있어야된다. 멸종동물은 불쌍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쁩니다. 동물원 동물들이 불쌍하다"
"동물원이 있어야 된다고 썼잖아. 그런데 뒤에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이야기한 거지?"
"네?"
혜린이는 당황한 눈치였다.
"이게 주장하는 글쓰기잖아? 혜린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적는 건데 내용이 맞지 않지? 그리고 갑자기 사람이 나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색하지 않아?"
"네..!"
"선생님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네..! 이해했어요!"
그러나 당찬 대답과는 다르게 무엇이 잘못된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잘 모르겠고, 혼나는 듯 느껴지는 이 상황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국어는 나았다. 사람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고, 느리지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수학은 정말이지 혜린이에게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학구열이 높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였다. 방과 후에 학원을 한 두 개씩 다니는 아이들은 있어도 전반적으로 공교육에 충실한 편이었다. 그중에서 혜린이는 학원을 매일 다니는 아이에 속했다. 예습이든 복습이든 추가적인 교육을 받을 텐데도 수업시간의 혜린이는 늘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한 눈빛을 보냈다.
혜린이의 수학 수준은 초등학교 2학년정도였다.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고 당연히 5학년 수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약수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혜린이에게 따로 알려주기에 쉬는 시간 10분은 너무 짧았다. 손 놓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일주일에 두 번씩 남겨 수학을 가르쳤다.
"혜린아, 8의 약수가 뭘까?"
"약수요?"
"어떤 수를 나누어 떨어지게 하는 수를 '약수'라고 하잖아. 수업시간에 배웠지?"
"아! 맞아요"
"일단 1이랑 자기 자신 8을 양 끝에 적고, 그 안에 8을 나눌 수 있는 수를 적어보자. 숫자 2는 8을 나눌 수 있을까?"
"네"
혜린이는 1과 8 사이의 널찍한 공간 사이에 숫자 2를 적었다.
"그다음, 숫자 3으로 8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제발 아니요라고 대답해'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혜린이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정말 열댓 번은 설명한 내용이었다. 어느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학습이 어려운 아이가 여태껏 수업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앉아있던 건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눈치껏 따라 하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혜린이를 남겨 가르쳤다. 구구단은 좀 나아졌지만 약수 개념은 매일 까먹고 외우 고를 반복했다. 분수의 곱셈도 해야 하고, 직육면체 전개도도 그려야 하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혜린이 몸속에 타이머가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잘 잊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었을테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빠듯하게 진도를 맞춰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 아이만 일주일에 몇 번 데리고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특수학급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육과정을 착실히 따라올 수 없는 경계선에 있는 아이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혜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5학년 수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기본적인 수개념과 연산을 눈높이에 맞게 배우는 일이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혜린이는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무리를 만든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혜린이를 기피했고, 혜린이는 무리에 속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학창 시절을 보내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대놓고 배척하진 않아도, 은근히 어울리고 싶지 않아 하는 티를 내는 그 모습 말이다.
서로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새 학기가 지나자, 혜린이의 서툰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혜린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을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지금이 웃긴 상황인지, 심각한 상황인지 알아채는 것이 더뎠고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자주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예민한 고학년 여학생들은 어리숙하고 눈치 없는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 했다.
혜린이가 잘못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혜린이는 언제나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그 묘한 '다름'이 혜린이를 홀로 있게 만들었다. 담임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포용을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혜린이의 말과 행동이 훈계를 해서 고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다. 혜린이는 영문도 모른 채 늘 혼자 남았다.
"혜린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친구의 마음이 어떨지 잘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해"
"네!"
보이지 않는 그 지점을 짚어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교실에는 수많은 혜린이가 존재한다. 이 아이들은 인지기능이 부족해 주의력, 상황판단능력, 추론능력, 언어이해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특성은 중학년,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학습과 사회생활을 힘들어한다. 이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겪게 될 학습에 대한 불안감, 교우관계에 대한 패배감은 자존감 하락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키고 심할 경우 비행으로 표출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따라오기엔 어렵고, 그렇다고 특수학급에 입급할 정도가 아닌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인식과 지원, 별도의 교육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적절한 검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인지 기능과 사회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눈높이에 맞는 학습과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도와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정책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 교실의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오롯이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