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많은 너, 좋아하는 걸 모르는 나
나는 네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알아.
빨간색, 빨간색이지.
3, 4살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선택해야 할 때 항상 빨간색이었어.
네가 가지고 놀던 색연필 세트에서도
빨간색만 키가 작아지고 작아지고 했지.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학교 티셔츠도 네가 자주 들고 다니는 물건들도
어딘가에 빨간색이 꼭 있어야 했어.
그러다 어느 날 네가 물었지
"엄마,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이 간단한 질문에 난 멈칫, 대답을 못 했어.
그다음에도 너는
"엄마, 엄마는 어떤 노래를 좋아했어? 들려줘."
"엄마,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뭐 먹고 싶어?"
나에게 자주 물었어.
그런데 너에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숨을 들이켜고 생각하고 생각해 답을 해야 했지.
너에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랐어.
그리고 그걸 모르고 살았다는 걸 이제 알았어.
Was ist deine Lieblingsfarbe?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아이가 저렇게 물어 왔을 때, 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그런 것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나는 빨간색이 좋아. 나는 레고가 좋아. 나는 엄마 아빠가 좋아. 나는 친구 누구가 좋아. 나는 수영장에서 잠수하는 게 좋아. 그럼 엄마는 어때? 이야기해 줘.
예전에 할머니가 녹색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서 그제야 나는 녹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내가 운동화를 살 때, 마트에서 초콜릿을 고를 때, 내가 차를 마시려 할 때 나에게 녹색을 물어다 주었다. 이건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야. 이건 녹색이니까 엄마가 해, 나는 빨간색 좋아하고 엄마는 녹색 좋아해, 맞지? 엄마?
그렇게 나는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녹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 물건들에도 아이처럼 녹색들이 늘어나 있는 것, 그리고 녹색인 물건이 가까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마음에 드는 물건이 된다는 것, 그것이 참 신기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 그래서 남들도 무엇인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껴 못 쓰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실컷 써 보는 것, 이상하게 난 그걸 지금까지 몰랐고 못 해 봤다.
누군가 나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래서 그걸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해 보고 있다.
커피숍에 친구들과 가면 메뉴를 제일 마지막에 골랐다. 친구들이 고르는 메뉴에 따라 내 것도 정해졌다. 누군가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면 다르게 생각하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 내 생각이 자기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전할까를 더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 같다는 말, 그런데 나는 괜찮으니 네가 원하는 걸, 편한 걸 같이 하자고 더 많이 말했다.
그렇게 취향이 없었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무서운 나에게 아이는 자주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 음악, 이야기, 사람...
아이에게 대답을 해 줄 때마다 나에게 취향이 생긴다. 아이의 머릿속에 나는 녹색을 좋아하고 아빠와 자기를 사랑하며 시금치를 좋아하는, 또 깨알 같은 글씨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자주 듣지 않지만 자기가 불러 주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고 규칙을 지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취향이 생기니 물건을 살 때 마음에 들어 기쁠 때가 많아졌다. 좋아한다 생각하니 메뉴 고르고 그걸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쉬워졌다. 그리고 나는 이걸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걸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자주 말하게 되었다.
나의 취향은 나란 사람이 되고, 나의 취향은 아이가 나에게 해 주는 배려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챙겨주는 아이,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아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취향을 알고 그대로 인정해 준다. 그리고 서로가 싫어하는 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른에게도 자꾸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 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너는 그렇구나, 그런 사람이구나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믿음이, 확신이 생길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 그걸 스스로 소중하게 지켜주는 시간 그것이 정말 필요하다.
아이는 내게 그걸 선물로 주고 있다. 지금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제일 궁금한 아이, 그리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아이, 또 그래서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아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