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자주 만나는 이웃들
네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마트에 가는 길에서,
우리와 산책을 가다가,
"Hallo" 인사를 받았지.
네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너만 보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너의 학교 아이들
너는 쑥스러워서 간신히 손만 흔들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음.. 이름은 몰라."라고 했지.
두더지 게임 같았어.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오는
너를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
그리고 그 엄마아빠들
그렇게 알게 된 우리 동네 사람들
우리가 사는 도시는 베를린, 독일의 수도. 사람이 많고 복잡하다. 물론 한국의 대도시와 비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베를린의 한 구석, 여기는 대단지 아파트가 없고 높아야 4층인 작은 아파트들과 주택들이 섞여 있는 동네다. 사람들이 사는 집이 모여 있는 곳에는 가게도 없어서 마트와 가게들은 10분 정도 가야 한다. 놀이터가 여러 개, 초등학교가 3개, 중등학교 1개가 있어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이 많이 산다.
우리가 처음 이사 온 10년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다. 그렇단 이야기는 엄청 조용한 동네라는 것,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온 세상에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해서 집 안에서 커피 내리는 소리도 크게 느낄 정도였다. 그런 동네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난 자리를 아이를 가진 가족들이 채우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파트만 해도 모두 8 가구, 젊은 부부는 우리뿐 일곱 집은 노부부가 살았다. 그중 우리 윗집 부부가 돌아가시고, 2층 혼자 사시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가셨다. 그 집에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이 이사를 와서 우리 집까지 세 집이 아이들 소리가 가득이다.
이민자가 많은 동네에서 자란 남편은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자기가 여기에서 사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릴 때 이 동네는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나에게는 직장도 가깝고 복잡하지 않기도 하고 산책할 수 있는 숲도 가까운 그냥 편안한 동네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하나하나 이 동네의 숨겨진 보물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처음 자전거를 가르치던 남편, 그걸 창 너머로 바라보며 잔소리하시던 2층 할아버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아랫집 할아버지는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항상 아이에기 말을 걸어 주신다. 그러면 아이는 제 할아버지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아이와 유치원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버스정류장 뒤에 있는 아파트에서 한 아주머니가 출근을 하셨다. 그럼 늘 나와 아이에게 "Morgen" 인사하고 안부도 묻고 잘 다녀오라 해 주셨다. 서툰 엄마인 나에게 그건 참 큰 힘이 되었다.
동네 과일 가게 아저씨는 아이가 처음 말한 독일어 때문에 친해졌다. 그 독일어가 바나나인 게 우습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가 학교를 가기 전까지는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를 간 다음부터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에게 "Hallo"라고 인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나를 보고 알게 된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하기 시작한 것. 내 외모는 많이 다르니까 이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여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여러 번을 만나야 그제야 아! 하는 것. 참 미안한 일이다.
특히 아이와 동네를 다니다 보면 온 동네 아이들이 아이 이름을 외친다. 아주 멀리서도. 아이 반뿐만 아니라 큰 아이들도 말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누구냐 물었는데 아이는 어깨만 으쓱, 모른다고 한다.
아이도 여기 아이들과 다른 외모에 한국 이름을 가져서 눈에 띈다. 아이에게 우리 같이 이름을 기억해 보자 한다. 내 이름은 알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 이름도 몰라 주면 안 되니까라고.
동네에서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동네가 안전하게, 건강하게, 따뜻하게 느껴진다. 서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은 누군지 알지 못해도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누구의 아빠와 엄마가 되어 서로 알아갈 때가 있다. 저 사람은 늘 이 시간에 저걸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이 동네가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이런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쉽다. 아이가 울고 떼를 써서 민망해지는 순간에도 나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지나가는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탄 아이가 나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놀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부모와 서로 다른 벤치에 앉아 거리를 두어도 편하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가지도, 너무 멀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많은 동네다.
아이는 이제 동네 작은 거리를 모두 안다. 어디에서 버스를 타면 교회에 가는지, 할머니댁에 가는지도 안다. 동네 어디에 누가 사는지도 안다. 마트에 가는 길, 도서관에 가는 길도 안다. 머릿속에 지도처럼 하나하나 우리 동네가 콕콕 박혀 있다.
아이에게 집에서 가까운 익숙한 세계가 있다. 그 속에서 아이는 매일 만나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매일 가는 곳, 자주 가는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자기의 세계를 키워가는 중이다.
언젠가 집 가까운 이곳이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는 곳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 이렇게 무수히 많은 매일에서 아이는 익숙한 일들을 해 보며 단단해지고 있다. 그곳에 아이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수많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