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울 때, 마을이 필요한 이유 (1)

한인 교회 가족들에게 받는 것

by 단단한 이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가 태어나고 나서도

그리고 네가 이렇게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너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너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너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주시는지

알고 있니?


사랑받고 있어서

너도 어른들을 믿고 있어서

그 마음으로 크고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하다 기도드린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가는 절이 좋았다. 아이들은 없고 할머니들만 계시는 절이었는데 친구가 없어도 할머니를 따라 가 만나는 다른 할머니들의 눈빛이 좋았다.

자꾸 먹어 보라고 권하는 떡이나 편히 앉으라고 내어 주는 자리 같은 것이 참 편했다.


그래서 커서도 마음이 불편하면 절에 가곤 했다. 아무 말 없이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나와 아무 데나 털썩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할머니가 옆에 계시지 않아도 그렇게 할머니 같았다.


여기에 오면서 나는 그런 곳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고 또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님이 보여주신 한인교회가 그곳을 떠올리게 했다.


어머님이 아주 오랫동안 다닌 교회, 믿음이 없는 며느리도 괜찮으신 분이지만 손주를 믿음으로 키우고 싶으셨다. 그 소망을 도와 드리자는 마음으로 나간 교회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정도 되었을까. 그때 교회에 가 아이와 인사를 드렸다. 그날 할머니들에 둘러싸여 사랑을 받는 아이를 보며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자리에 나와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우리 부부가 주는 사랑만이 아니라 아이에게 이 어르신들의 사랑을, 믿음을 주고 싶은 욕심이 시작이었다.


아이가 돌을 맞았을 때,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그 모든 순간 교회 어르신들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사하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아이는 교회라는 곳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또 다른 가족을 만났다.


아이는 교회 예배당을 친구들과 뛰어다닌다. 예배 시간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무엇을 해도 좋으신 어른들 사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국보다 여기에서 산 세월이 더 긴 어르신들은 서툰 아이에게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도 좋다고 해 주신다. 내가 가진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된다.

건강하게 일주일을 보낸 아이가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 인사하면 머리를 쓰다듬어 안아 주시기도 하고 이번 주 학교는 어땠냐 물어봐 주시기도 한다. 또 집에서 챙겨 온 간식들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시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가 학교에 가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이가 생일을 맞으면 그것도 우리에게는 노래하고 감사하고 축하할 일인 것이 보통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아이는 우리의 사랑뿐 아니라 어른들의 사랑이 자기 것인 줄 안다. 어른들은 누구나 자기를 보며 웃고 토닥여 주고 따뜻한 말을 해 준다. 아이가 독일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신다. 아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처음 보는 일처럼 신기하게 들어주시기에 아이는 신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아이는 믿음과 사랑을 가득 충전한다. 그것으로 학교에 가 자신을 지키고 친구를 만나 배우고 사랑하며 돌아오는 것이다.


어머님과 아버님에게는 낯선 이곳에서 한국어로 예배드리고 같이 아이들을 키우고 서로 의지하며 오랜 세월 하나하나 키워 낸 곳이다.

나에게는 어머님의 교회에서 시작해서 내 삶 안에서 아이와 함께 감사함이 자라나는 곳이다. 그리고 나 또한 여기에서 의지할 곳, 기댈 곳을 얻었다.


한 사람에게 가족 말고도 기댈 곳이 있다는 건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큰 힘과 위로를 준다.


아이는 어른들께 편안히 다가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묻는다. 어른들의 눈빛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아이도 다른 이에게 친절할 때가 많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할 때 어른들이 그건 안 된다고, 이렇게 해야 더 좋다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실수할 때에도 함께 도와주는 어른들을 만난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기에게 실수할 때, 부모가 자신에게 잘못할 때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이렇게 해 보자라고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할 줄 안다.


아이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보여주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인 내가 모자랄 때 교회 어르신들은 그걸 채워 주신다.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없는 것, 한 부모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내가 아이에게 보여주지 못할 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이는 여기 교회에서 또 다른 어른들께 배운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와 다르게 자라는 것,

아이의 온전한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나는 그것을 목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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