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친구와 싸웠을 때
집으로 오는 길
"엄마, L이 요즘 나에게 친절하지 않아서 안 놀아."
네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지.
"그래서 난 L이 친절하지 않으면 다른 애랑 놀아. 그런데 좀 속상해. 엄마가 제니한테 말해 줄 수 있어?"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더 놀랐어.
"제니한테 L이 나한테 엄마들이랑 있을 때처럼 하면
놀 수 있다고 해 줘. 내가 말하면 안 들어."
내가 도와줘도 되냐고 다시 한번 물었지.
L의 엄마인 제니에게 이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응, L이 나한테 함부로 하는 건 싫어. 하지만 친절하면 놀 수 있어. 나는 L 하고 놀고 싶어. 엄마가 도와주면 좋겠어."
네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 네 가장 중요한 순간을 나에게 보여 준 그때 그 순간이, 네 눈빛이, 내 손을 꼭 잡던 그 손이, 네가 나에게 보여 준 믿음이.
나에게 도와 달라 말해 줘서 고마워.
나를 믿어 줘서 고마워.
아이가 학교에 가 처음 사귄 친구 L은 축구클럽도 같이 가는 친구,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2번은 축구 클럽에도 같이 가고 집도 가까워 주말에는 서로의 집에서 놀기도 한다.
두 아이,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인지 캐물으니 얼마 전부터 다른 아이들하고 놀 때, 그리고 자기하고 놀 때 L이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고 아이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이가 다르게 하자고 하면 자기 고집만 피우거나 L의 말을 안 들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꼭 안기도 한다면서. 그래서 요즘은 L이랑 안 놀고 다른 아이들이랑 논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놀아도 L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고 불편한 거였다. 그래서 아이가 생각한 방법은 나에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거였다.
매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매달리고 뛰어다니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인데 마음은 이렇게 여리고 여린 것이다.
아이가 도와달라고 한 그다음 날, 우리는 제니와 L을 만나 또 같이 축구 클럽에 갔다. 아이들 트레이닝이 시작되고 나서 제니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이야기를 시작, L이 집에 와서 아이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서 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웃음이 나와 아이의 말을 전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된 우리는 둘 다 한숨을 쉬며 웃었다.
친구여도 서로를 위한 방법은 하나씩 배워나가야 하는 아이들, 나랑 친하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친구인데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친구이지만 나에게 함부로 하면 같이 놀 수 없는 것, 친구이기 때문에 그래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은 것, 두 아이는 지금 그걸 배우는 중이다.
제니와 나는 서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자고 웃으며 헤어졌다. 제니는 L에게 친구가 불편해하는 건 하지 않기로, 우리 아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다시 한번 말해 주기로 했다.
나는 L이 아이를 좋아해서 자기처럼 하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뜻대로 움직여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말해 주기로 했다. 네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걸 L이 지금 배우는 중이라 실수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덧붙여 말해 주었다. 네가 L을 친구로 생각하면 기회를 한 번 더 줘 보는 게 어떻냐고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일을 말해 줘서 고맙다고,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멋있다고.
며칠 뒤 아이는 내게 "요즘엔 L이 괜찮아. 우리는 다시 놀기로 했어." 속삭인다. 진짜 잘 됐다는 내 말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관계를 오래 끌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상대를 나만 갖고 싶은 욕심, 상대가 너무 좋아서 생기는 실망, 상대가 나를 함부로 해서 생기는 분노, 상대가 미워도 보고 싶은 그리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때의 답답함
그러나 그런 마음에도 같이 있어서 즐거운 순간을, 상대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을, 내 사람이 같이 있다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사귄다.
관계는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이어 나는 것도 잘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도 잘 맺어야 하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만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예의 바른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