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17일은 그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그녀 나이 31살,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둘은 결혼 전에 해외 선교사로 살고 싶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그들이 같은 마음으로 품었던 곳은 몽골이다. 그래서 둘은 신혼여행을 답사 겸 몽골로 결정했다.
물오징어를 `꽁꽁` 얼려 신혼여행 가방 깊숙이 넣었다.
울란 반토라에서 교회 사역을 하시는 한인 선교사 부부가 가장 먹고 싶다는 한국음식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명이란 것이 거창한 미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그 연장선인 것을 말이다.
선교사님 내외분은 신혼부부의 숙소를 첫날은 시내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 예약해 놓았고 이틀째부터는 적막한 산속 깊은 곳으로 잡아 놓으셨다. 나름 운치 있는 오래된 호텔은 여행객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둘 뿐이었다. 둘은 집무실까지 겸에 있는 큰 방에서 차를 마시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발점은 갓 결혼한 부부답게 부드러웠다. 그러나 둘은 그날 밤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여자는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짜증이 났고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는.
신기하게도 둘은 아직도 20년째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둘째 아이가 말했다.
“아빠는 나중에 한국 가서 살고 싶다고 했지. 엄마는 남아서 케냐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그럼 나는 어디에 가서 살까?” 세 아이 중 관찰력이 가장 뛰어 난 아이다. 평소 같으면 “엄마는 케냐에서 살 거야. 아빠가 한국에 가서 돈 벌어서 엄마에게 생활비 보내 준다고 했어.” 이렇게 말한다.
그쯤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무심결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는 아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시골 고아원 봉사는 코로나 19가 끝나면 엄마 혼자서 가려고. 너희들 졸업하면 아예 시골에서 살고 싶었는데 이젠 너희들도 컸으니 기회를 보면서 시작하려고 해. 그래서 아빠 한국 가면 엄마도 한국 가려고 아님 아빠가 엄마 따라오던지. 암튼 엄마는 아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라며 씁쓸하게 웃는 남편을 슬쩍 보았다.
“난 당신 없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깐 죽는 것도 내가 먼저 죽으려고. 당신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알았지?” 그러자 그는 황당해하며 내 눈을 피해 딸을 보며 말한다. “엄마는 남편이 아닌 종이 필요한 거야. 죽을 때까지 부려 먹으려고.......” 그 말이 반은 농담이요 반은 진실임을 나는 안다.
그렇게 둘은 나이를 먹어 간다.
둘은 성격이 다르다. 마치 그녀가 불이라면 그는 물인 것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그는 바삭하고 맛있는 과자와 견과류 그리고 건어물 같은 건조한 음식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푸짐한 국물요리와 김치 한 종류만 있어도 밥 한 사발 뚝딱 먹는다. 영화 취향도 다른 것이 그는 SFC와 판타지를 좋아한다. 아직도 매트리스와 스타워즈를 보고 또 본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가 시작할 때쯤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결국 자리를 떠 버린다. 그녀의 취향은 `클래식` 같은 영화를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조인성과 손예진의 찐 팬이 되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 생애에 한 달 만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남편과 이대로 살고 싶다. 특별한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며 함께 걷고 싶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가족들과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서 '사랑하고 감사했다'라며 인사를 나누고 싶다. 둘이서 말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