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티셔츠에 얼룩얼룩 물이 빠진 검은색 진을 즐겨 입던 친구 영심이가 그리운 날이다.
본명은 영실이지만 친구들은 영심이라고 불렀다. 영심이는 날씬한 몸매에 쌍꺼풀이 예뻤고 말랑말랑한 피부에 한쪽 볼은 보조개까지 패어서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친구는 여학생들만 득실득실한 학교에서 보다 단연코 교회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성격까지 털털했다. 머리가 좋은 편이라 조금 노력만 하면 성적이 상위권 안에 들어갈 수준이었지만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집이 아닌 밖을 선택했다.
우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줄곧 같은 반이었고 키가 큰 편이라 뒷줄에 앉곤 했다. 내 기억으로 우린 한 번도 말다툼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대학을 가기 위한 학교가 아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는 학교였기에 나는 고 2 때는 방과 후 학원을 다녔다. 고 3 여름이 되기 전 친구들은 학교를 통해 추천받은 곳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 강남으로 영심이는 논현동 H백화점으로 면접을 보러 갔고 곧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는 어린 나이에 직장에 적응하느라 서로 연락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삐삐가 없었던 시대라 직장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쉽지 않았고 영심이는 서비스 쪽에서 일하다 보니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1990년 2월 전국으로 흩어진 3-1반 친구들이 교실에 모였다. 나는 많은 친구들 속에 영심이를 찾았다. 원래 예쁜 친구가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더 예뻐졌을까? 싶어 이리저리 눈으로 친구를 찾았지만 영심이는 보이질 않았다.
한쪽 구석에 누군가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친구들 속에 품이 넉넉한 긴 검정 코트를 입고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삐죽 들어 친구들 사이로 얼굴을 내미니 그 안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영심이가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친구가 벌떡 일어나 나를 반겨 줄까 싶었는데 영심이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만 있었다. 품이 넓은 검은 코트 안에 나름 몸을 가렸지만 불러온 배를 감출 수는 없었다.
늘 명랑하고 웃음이 많았던 영심이는 차분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치, 언니처럼 말이다.
임신 막달의 몸으로 용기를 내어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졸업식에 온 나의 친구 영심이. 가슴이 먹먹했다.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 낼 수가 없었다. 사실, 소리치고 싶었다.
“도대체 너 제정신이야. 누구 아기를 임신한 거야?”
“너희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너마저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영심이 엄마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 넷을 데리고 여닫이문이 있는 작은 가게에서 소주와 막걸리와 안주를 팔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언니는 두해 전부터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 딸려 있는 방 한 칸에서 여동생 둘과 엄마와 영심이 넷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심이가 괘씸했고 서운했고 미웠다.
우리는 졸업식 이후에 만 날 수 없었다. 아마 영심이는 그날 이후 얼마 안 되어서 아기를 출산하고 키우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영심이의 남편은 우리 학교 맞은편에 있던 남학교 학생이었고 나이는 같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 남학생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영심이의 엄마와 두 여동생은 서울 어린이 대공원 쪽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난 여전히 영심이 소식이 궁금했다.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해도 그녀와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구가 없었다. 아마도 졸업식 이후 영심이는 모든 친구들과의 연락을 스스로 끊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나는 영심이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직장생활 2년을 하고 나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고 스물셋 되는 해에 화양동에 있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사역자로 일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종종 야외 소풍을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나는 주위 어디쯤에 영심이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의 예쁜 얼굴을 찾곤 했다.
스믈 여덟이 되는 해에 어떻게 영심이와 연락이 닿았는지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나와 영심이는 어린이 대공원 부근에서 만났다.
오래전에 아이를 출산한 친구는 여전히 날씬하고 예뻤다. 하얀 정장을 입고 나온 친구는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이는 아들 하나뿐이고 초등학생 1학년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과 자신은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남편은 덤프트럭을 운전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졸업 후 처음 만난 영심이는 예전과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깔깔 거리며 웃던 발랄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그녀가 영심이가 아닌 것 만 같았다.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상한 경계선까지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영심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만나지 못했다.
나의 카톡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록이 되어 있다. 여전히 고등학교 몇몇의 친구들하고 연락을 하며 지낸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곳에 나의 친구 영심이가 여전히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