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동네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네 가족 4명, 12명이나 되는 큰아버지네, 그리고 우리 식구 6명 총 22명이 살았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는 큰집에 타지에서 사시는 막내 작은 아버지 가족 5명과 홀로 된 둘째 작은 엄마의 아들까지 합세하면 집안이 꽉 찼다.
할머니는 셋째 며느리인 엄마를 많이 예뻐하셨고 그 집의 아들 셋에 딸 하나인 나를 유독 예뻐하셨다. 든든한 가족과 이웃들이 있었기에 나는 외로움을 모르며 자랐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 외에 연대감을 경험한 곳은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부터이다. 언니가 없던 나는 교회 언니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위로 오빠만 셋이 있어서 교회 오빠들과 남동생들하고도 편안하게 지냈다.
집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던 칭찬과 격려를 교회에 가면 들으니 당연히 교회생활에 재미를 붙였다. 아마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교회를 나온 단지 환영의 말이었을지라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특별히 따스한 형제애를 나눈 곳은 작은 선교회에서였다. 그곳은 양육과 돌봄, 나눔과 위로가 있었다. 나의 20대는 이 모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을 했다. 그 영향으로 어느 곳에 가든지 작게나마 사랑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렇게 사랑이 흘러 흘러 케냐까지 온 것일 것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쓰여 있다.
아무리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어느 집은 부모와 자식이 증오의 관계가 되기도 하고 아예 단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족은 싫든 좋든 관계를 유지해 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는 해외 살이 15년 차로 가고 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에 가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케냐에서 혈육이라곤 오롯이 우리 가족 5명뿐이다. 앞으로 세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케냐를 떠나갈 것이고 다섯은 넷이 되고 넷은 셋이 되고 셋은 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떠나 가지만 이웃은 내 곁에 있다. 케냐 교민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오는 자 막지 말고 떠나는 자 잡지 말라.'
사실 삶과 고민을 나누는 이들은 내 가까이에 있다. 이것은 비단 타국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것을 가족이라기보다는 공동체 또는 모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겠지만 세 가지로 부류 해 보았다.
첫째, 교제 공동체(모임) –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
둘째, 신앙 공동체(모임) – 신앙으로 연결된 형제, 자매들
셋째, 비전 공동체(모임) – 추구하는 이상, 목적으로 맺어진 사람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모임을 구성할 것인가. 내가 속해 있는 소모임이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모임이든 크고 작은 문제는 발생한다. 모임을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은 룰이 필요한데 그것은 거창한 회칙이 아닌 서로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 거기에 서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사랑과 물질을 요구하지 않으며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풍성한 모임, 공동체가 될 것이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감의 기쁨은 클 것이다.
세계와 자연과 인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연대감은 우리 삶에 윤활유 같은 역할이 된다.
내가 아파할 때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가 있고, 누군가 기뻐할 때 슬퍼하는 이가 있으며, 누군가 이익을 본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 돈이 많다면 누군가는 돈이 없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며 좋은 것을 나누며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는 것이 너를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함이 된다.
2022년 새해에는 자주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소소한 가족애를 나누고 싶다. 호랑이 해에 나의 가족은 비전 공동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