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No. 1

봄날

by Baraka

어느 해 한국 분 집에서 쑥 뿌리를 얻어 왔다.

나는 아줌마에게서 쑥을 어디에서 구해 왔냐고 물었다. 마음 좋은 그녀는 본인도 한국 분 집에서 얻어 왔다고 했다. 이렇게 한집 걸러 한국의 쑥이 케냐 우리 정원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한차례 비가 내리자 쑥은 금세 자라 올랐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가위로 싹둑싹둑 쑥을 잘라 소쿠리에 담아냈다.

나는 쑥에 얼굴을 파묻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직 어린잎이라 진한 쑥 향기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봄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로즈메리 밑에 심겨진 쑥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꼭대기 집이라고 불렀다. 산에서는 제일 가까운 집이지만 마을 초입에서는 제일 먼 곳이 우리 집이었다. 한일자처럼 가로로 길게 뻗은 집에는 부모님과 오빠 셋과 막내인 내가 살았다. 방은 2개뿐이었고 가운데에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었는데 양쪽 방에 군불을 지피는 솥들이 걸려있었고 안방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아궁이 그 옆에는 여름날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바깥으로 공기가 통하는 솥이 있었다. 오빠들의 작은 방으로는 한 개의 솥이 걸려 있었고 부엌 한쪽의 나뭇 간에는 가을에 수확한 밤알을 묻어 두면 아버지가 군불에 밤을 구워 주셨다.


안방은 창호지 문이었는데 손잡이 바로 밑에는 어린아이 손바닥 만한 유리가 끼워져 있어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마루에는 문이 없어서 장마철이나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방문 앞까지 빗물이며 눈이 몰아쳐 들어오곤 했다.

담이 없던 마당 끝에는 플라타스 나무가 양쪽에 서 있었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 1년 365일 빨래 줄이 걸려 있었다. 겨울에는 여섯 식구의 옷들이 얼어서 마른오징어처럼 따닥따닥 소리를 내었다. 빨래 줄 한 구석에는 가끔씩 아버지가 독사를 잡아 껍데기를 벗겨 빨간 살덩이를 말렸는데 혹시라도 식구들이나 인근 사람들이 몸에 담이라도 들면 말린 독사를 내놓으셨다. 신기한 것은 농사일을 하다가 담이 걸린 사람들이 소주에 곱게 간 독사 가루를 섞어 마시면 금세 효과가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 앞에는 키 작은 살구나무가 아기 주먹 만한 열매를 맺었고 뒤편에는 맛 좋은 포도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작은 도랑 건너에는 토끼를 키웠던 기억이 어슴프레 난다. 외양간에는 눈이 큰 누렁소가 있었는데 여름이면 소 먹이를 위해 아버지와 나는 소를 앞세워 풀 섶이 무성한 무덤가 옆에 가기도 했다.

작은 뜰엔 봄에는 하얀색과 분홍색 매화, 앵두꽃이 피었고 집 뒤로는 감나무 예 향나무가 반달 모양처럼 심겨 있어서 그나마 뒤뜰을 멋스럽게 했다.

마당 개울 너머에 있는 이웃집 할머니의 과수원에는 봄마다 분홍색 복숭아꽃이 한가득 피었고 우물가에는 고소한 꽃향기가 나는 밤나무가와 그 옆으로 야생으로 자라는 산딸기가 무성하게 자랐다. 봄날에 안방 문을 활짝 열어 놓기라도 하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케냐 키피피리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장과 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