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착잡하고 날씨는 흐릿한 날이었다.
보라 씨는 텅 빈 하늘을 향해 한 마디를 내뱉는다.
"하나님, 아시죠? 지금껏 남의 자식(대학생 선교 ) 키웠으니, 이제는 제 자식을 책임져 주십시오."
10년 전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라 씨는 가슴이 답답하고 앞날이 암담할 때면 자신이 믿는 신께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멀리,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삶 속에서 역사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보라 씨의 그 투정이 하나님께 통했나 보다.
보라 씨의 아들 D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케냐를 떠난 지도 오늘로써 87일째이다. D는 홀로 한국에서 12주를 보내며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며 케냐에 있는 부모를 대신해서 양가가족들을 찾아뵈었다. D는 고시원에서 비자 인터뷰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생전 처음으로 은행계좌를 열어서 그런지 체크카드는 하루 30십만 원 이상을 사용할 수 없고 인터넷 계좌이체도 30만 원, 은행에서 송금하는 금액 한도액은 1백만 원 이상은 안된다는 것을 경험한다. 만 18살, D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 가고 있는 중이다.
D가 혼자 한국에 와 있다는 소식을 아름아름 알게 된 보라 씨의 지인들이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나이로비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형과 영어. 문화 캠프로 손주를 따라왔던 할머니, 케냐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에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은 이모. 삼촌, 보라 씨가 한국에 있을 때 청년사역을 하며 도왔던 후배며 7년 전에 제주도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알게 된 학원원장님 부부 그 외 많은 분들이 D를 만나주었고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해 주었다.
D는 지난주 금요일(8월 11일) 밤에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부모님의 지인 댁에서 5박 6일을 보낼 것이다. 내일이면 짐을 싸서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이동을 할 것이다. 인생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D. 그는 천사 같은 분들과 함께 스톤마운틴 파크와 코카콜라 기념관, 아쿠아리움과 다운타운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인 편으로 부모에게 전달될 사진을 위해 환한 미소를 지어본다. 안심하시라고 잘 살 거라고 걱정 마시라고.
보라 씨는 성경 창세기에서(아브라함과 롯)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만났다는 장면을 떠올린다. 혹시나 D에게 선을 베푼 이들은 보라 씨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대접했던 손님들 속에 있었던 천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텃밭에서 따온 차요태로 새콤달콤한 피클을 만든다. 이웃에게 나눌 피클병을 줄지어 세웠다. 결코 요행을 바라는 나눔은 아니다. 그냥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그러나 혹시 모르지 않은가. 선을 베풀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만날 수도 있으므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텃밭에서 수확한 차요태로 피클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