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사랑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을 사랑하고 그 책을 쓴 저자를 사랑한다.
한 줄 한 줄은 저자의 우주이며 글이나 지식이 아닌 사람의 의식이다.
책 속에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사람이 바라본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식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하다 보면 글쓴이도 나와 멀지 않구나, 직업이나 성별이나 연령을 관통하는 복잡하지만 나와 비슷한 인간성에 닿게 된다.
때로는 안타까운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무척 매력적인 사람도 만난다. 때로는 용서하기 힘든 사람도 만나고, 때로는 비극에 빠진 사람도 만난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안의 어느 구석에도 존재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재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냥 존재 자체로 인정한다.
그 존재가 내 안의 어느 부분과 만나게 되면 그것은 나만의 고유한 언어가 되고, 그 고유한 언어는 내 글을 통해 다시 녹아 흘러나온다.
책 속에서 만났던 인물들이 책을 덮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안의 무수한 인간군상은 나를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고,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보태어 글로 쏟아낸다. 그 과정은 나를 깊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기쁨이다.
아이의 소원이 엄마가 책 좀 그만 읽는 것이니,
아마 곁에 책이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그만큼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외로움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속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호수처럼 그렇게 잔잔히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왜냐하면 삶은 죽음과 묶여있고, 죽음은 반드시 혼자서만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 때문에 불안과 외로움을 비롯한 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많은 책 속에 관통되어 있는 복잡한 감정들의 뿌리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향한 어느 여정 안에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들이 문학이다.
인간에게서 외로움은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며, 그렇기에 모든 책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 감정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늘 외로움과 마주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은 쉬운 감정은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며 거부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근육통처럼 파스를 붙이거나 약을 발라주거나 마사지를 해줄 수도 없다. 게다가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는 때에는 외로움이 더욱더 숙명이 된다.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에 더해진 개개인의 외로움, 우리는 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마주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속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다.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꼬마부터 노인까지, 두 개의 성이나 또 다른 성을 선택한 사람까지, 인종이나 성별 상관없이, 태평양에 사는 사람도, 정글에 사는 사람도, 우주에 사는 사람도, 지하세계에 사는 사람도, 제3세계에 사는 사람도, 과거에 살든 미래에 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귀신이든 괴물이든 모두가 친구다.
모두가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
지금 외롭다면 책친구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문학이라는 광장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보자. 격렬한 인연도 좋고 고통스러운 인연도 좋다.
전쟁 속에서도 붉은 꽃은 피었고 하얀 눈은 내렸다.
잔잔한 외로움 속에서 잊지 못할 인연 하나 만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비 오는 날, 와인 한 잔 곁에 두고 만나는 책 속의 사람은 참 좋다. 참 좋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