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미워한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저녁을 차리느라 냉장고 문을 여니 필요 없다는 데도 기어코 녀가 안겨준 반찬통이 보였다.

허리가 아프고 심장약을 복용 중이고 당뇨도 있는 그녀가 구부러진 허리로 나를 주려고 반찬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해 죄책감이 일어난다.

그녀는 종종 우리 집에 오면 냉장고 문을 열어 뭘 해 먹고 사는지를 본다. 우리 집 식구들은 차가운 반찬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므로 멸치볶음이든 장조림이든 한 두 끼 분량만 만들어서 먹고 끝낸다. 찌개나 국도 마찬가지다. 일단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차가워지면 아무도 젓가락을 대지 않기 때문에 평소 밑반찬을 만들어 보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리 말을 해도 내가 주부로서 나태하다고 생각하신다. 그때그때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리는 일이 실은 더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도 말이다. 생각이 그쯤 가면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도대체가 그녀는 내 생각이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내 생활방식이나 생각은 아주 조금도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잠을 자려고 잠옷이 든 서랍을 여니 그녀가 사준 옷이 눈에 들어온다. 밖엔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어 잘 때라도 입으려고 넣어둔 옷인데 70대 할머니들이 입으시는 종류의 화려한 꽃이 프린팅 된 여름옷이다.

역시 그녀가 불편한 허리를 이끌고 시장에 가서 옷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5천 원짜리 옷 한 벌을 사면서도 기어이 3천 원에 팔라며 무리한 할인을 요구하셨을 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 죄책감이 든다.

나는 옷을 볼 줄, 제대로 고를 줄도 모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라 그녀가 사주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나를 만날 때마다 도대체 그런 옷은 어디서 샀냐고 묻는 그녀에게 시장에서 샀다고 하면 시장에도 옷을 잘 고르면 싸고 좋은 옷 천진데 어쩌면 그런 옷을 골랐냐고 하셔서 다음번엔 백화점에서 샀다고 하면 주부가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냐고 절약할 줄을 모른다고 하신다. 그런 일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분노가 치민다. 그녀가 준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돌아서며 다시 죄책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받는 일이 너무 싫었고 늘 거부하는데 지금 저 냉장고에 들어있는 반찬도 심장조영술로 입원해야 했던 날 입원실이 없어 중환자실로 입원시켜드리기 위해 모시러 간 밤 8시에 기어이 내 손에 쥐어진것이다.








분노

위협당하거나 해를 입는 개인의 지각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감정. 그 특징은 초조, 심리적 · 언어적 공격, 심장박동과 심폐운동의 증가, 폭력, 부정적 시각 등이다. 분노는 계속 일어날 수도 있고 가끔 일어날 수도 있다. 또 자기 내적일 수도 있고 외적일 수도 있으며 강하거나 약할 수도 있고, 몇몇 심리학자에 따르면 의식적일 수도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위협의 근원이 없을 때도 계속될 수 있고 증가할 수도 있다.





친정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좌절될 때나 내가 거부하였음에도 지속적으로 요구나 강요를 하실 때 분노가 올라온다. 과거의 어떤 날에는 분노를 크게 표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 앞에서 자신이 나를 잘 못 키워서 그런 거라며 우셨다.

남편은 연세 드신 노인은 바뀌지 않는다며 대답만 해드리고 뒤로는 니 맘대로 하면 되지 뭘 싸우냐고 답답해한다. 분쟁이 싫은 그는 내가 나쁘다고 했다. 아직도 기대하는 거냐고, 뭘 기대하는 거냐고 했다.




분노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며 존중받지 못해서 분노하는 것인데 이것이 의존인가? 내가 아직도 덜 자라서 그러는 건가?

누군가 나를 아프게 하려고 하거나 공격하려고 하면 분노로 나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길을 가는데 누가 내 따귀를 때리려고 하면 분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경로로 남편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갑자기 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은 분노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밥을 차리다가, 세탁물을 꺼내다가, 빨래를 개다가,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다가, 뉴스를 보다가, 걸레질을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맥락이 없이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올라와서 힘이 든다. 더 힘든 것은 이 분노에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행주를 집어던지는 일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내 감정이지 타인의 감정이 아니다.

내 분노를 아이들에게나 전혀 상관이 없는 타인에게 흘러가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심호흡도 해보고 싱잉 볼 연주도 들어보고 명상도 해본다. (물론, 그것이 끝나면 다시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알아서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미숙해서 그랬던 아니든 어쨌든 내 인생을 망쳤고 지금도 망치고 있다.

나로서 살지 못하고 그녀를 위한 딸로서 살아온 긴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녀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