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엄마가 아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그녀는 아플 때나 우울할 때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듣는다. 몸이 아파 먹는 일이 번거로울까 싶어 혹시 드시고 싶은 건 없는지 묻는다. 그녀는 답한다. 필요 없다고. 그녀의 생일이 가까워져 오면 전화를 건다. 생신이시니 함께 식사라도 하시자고 말한다. 그녀는 거부한다. 돈이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그녀와 오붓하게 영화구경도 가고 싶었고 내가 번 돈으로 좋은 옷도 사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극구 거부한다. 돈이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그녀가 거부하지 않는 일은 함께 병원에 가는 일이다. 본인의 생일이나 함께하는 식사와는 정반대로 병원에 가는 일은 먼저 요구해온다.

나는 그녀의 비서처럼 병원에 예약을 하고 동행하여 대신 접수와 수납을 하고 의사의 말을 듣고 그녀가 알아듣기 쉬운 말로 번역을 하여 전달한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입은 의상에 대한 그녀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나는 피부가 까만 편이니 그런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키가 작아 보이니 그런 디자인은 피하라는 등 의 조언이다. 그녀와 만날 때는 늘 내가 가진 제일 좋은 옷만을 골라 입는데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다음엔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 생각에 빠진다. 그녀가 입으라며 내게 사준 옷들을 떠올려본다. 짙은 핑크와 진한 보라와 밝은 주황의 현란한 색상의 옷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무난한 베이지나 흰색을 즐겨 입는 나로서는 그 무시무시한 옷들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것들은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면 돼.



" 네가 원하는 것들은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면 돼. "



내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나 해주는 것들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몹시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성의 없고 불효 막심한 나쁜 자식으로 취급된다.

그녀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녀의 형제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대접을 하기를 원한다. 동생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내가 달려가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바란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형제들의 일이라면 반드시 참석해주기를 바란다.

내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고 나를 발 뿌리의 돌멩이처럼 이리 걷어차고 저리 걷어차며 욕설을 했던 그들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와는 아버지가 다른 그녀의 아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그녀에게 나의 감정이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고는 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종이인형일 뿐, 하나의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자기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내게 좋다고 한다.

그녀의 형제들을 잘 보살피면 자기가 아니라 내가 좋은 거라고 한다. 자신의 아들에게 친절히 대하면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내게 좋은 일이라고 한다.

과거에 내가 그녀의 형제들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전혀 화두가 될 수 없으며 아버지가 다른 그녀의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감정과 생각을 가진 한 명의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일부이거나 아니면 그녀의 손에 쥐어진 인형에 불과하다.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나는 그녀의 인형이다.

생각과 감정과 욕구 따위는 전혀 없는 인형, 입히는 대로 입어야 하고 먹으라는 대로 먹어야 하고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인형이다.

그녀에게 나는 수단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수단.








수단으로써의 역할이 만성화되어 나는 타인에게 나를 수단으로써만 제공하게 었다. 나의 욕구나 감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욕구나 감정을 요구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는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을 스스로 억제한다.

감정은 완벽히 억제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감정은 새어 나온다.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혹은 물질에 대한 중독으로 새어 나오거나 쇼핑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이나 음식중독이나 성적인 중독이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모든 정신적인 증상에 대한 원인을 억제라는 단어 하나로 귀결할 수는 없겠지만 감정은 어떻게든 어떤 방향으로든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








내 안에는 공격성도 있고 분노도 있다.

오랫동안 수단을 위한 존재로 대해져 온데 대한 분노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 분노를 최대한 다듬어 표출했을 때 그녀는 내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철이 없어서.라는 말로 규정지었다.

내가 오만하고 철이 없어서 그녀의 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인지, 내가 옹졸해서 그녀의 요구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 생각해본다. 정말 그녀의 의견이 사실일까? 내가 괴로운 것이 비합리적이며

나는 자질미달인 열등한 존재인 걸까?

그녀가 말하는 나는 미적 기준이 낮고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나 관대함이 부족하며 사회성도 떨어지고 요리를 못하며 건강하지 못하다. 그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이다. 그녀가 내 그런 점을 지적해주는 이유는 타인은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와 영원히 단절되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나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라도 길러준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녀가 내게 주는 특별한(?) 조언은 칼날처럼 나를 이리 베고 저리 벤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는 그런 베임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녀 앞에 놓일 차가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가 겪는 죽어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육체적 고통들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다. 그녀의 형제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그녀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내가 대신해줄 수 없다. 그녀는 그것들을 내가 대신해주기를, 함께해주기를 바라지만 나는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나를 어떤 말로 비난하고, 나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한다고 해도 결코 변치 않을 사실은 자신의 삶의 무게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그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본인의 생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자녀인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녀의 인형은 더더욱 될 수 없다.

내가 나를 낳아준 분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갖는 패륜적인 존재라는 죄책감을 그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고통도 혼자서만 감당해야 할 녀만의 몫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아름다움이 주는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