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이며 고속도로보다는 굽이 굽이 작은 오솔길이다.
1년 365일 연중무휴이며 출근과 퇴근도 없다.
두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행복했지만 힘들었다.
책이란 책은 다 뒤져보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책처럼 크지 않았고 몸무게와 키도 표준에서 한참 벗어났다. 감기를 달고 살았고 통잠은커녕 쪽잠도 겨우 잤는데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정신력으로 겨우겨우 버텼다. 외딴섬에 아이 둘과 고립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평균 주 3~4회 늦게 들어왔고 이유는 업무 때문(?)이었기에 원하는 만큼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친정이나 시댁에도 도움을 요청할 형편은 아니었다.
아이가 울면 안고 있느라 화장실만 겨우 갔고 밥을 차려먹을 수 없을 만큼 계속 울어서 빵과 우유로 하루 두 끼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모유는 잘 나오지 않아 아이는 배부르게 먹지 못했고 또 그래서인지 깊게 자지도 잘 놀지도 않았다. 분유를 먹이려 하면 모유가 아니라서 거부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면 몸무게가 표준보다 미달이라고 했다.
너무 울어서 어린이집에는 보내지도 못했다. 그런 큰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다행히 분유를 먹어주었고 잘 놀고 잠도 잘 잤으나 한 번씩 아프면 꼭 입원을 해야 할 만큼 된통 아팠다. 모세기관지염, 장중첩증, 폐렴, 이름도 생소한 기쿠치병, 천식... 작은 아이의 잦은 입원 덕분에 큰아이에게 분리불안이 생겼고 아픈 아이 간호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지쳤는데 자라고 나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큰아이에게 사춘기라는 게 찾아왔고 사사건건 거부의사를 표출했으며 불경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남편과 큰아이의 충돌이 불안했고, 큰아이의 반항이 두려웠다.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은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에 비해 자유분방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아내거나 직접 해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이 일을 하다 이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저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다가 또 다른 일을 벌여 집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었다. 또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해왔다.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기에 하루가 마무리될 때면 빨리 아이가 잠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는 내게 엄마는 늘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너 때문이 아니라 엄마 마음의 문제라고 했고 아이는 말했다.
" 그 마음 좀 어떻게 해봐요~ "
인생을 살아오며 줄곧 나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 엄마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나를 짐스러워했으므로 어디에 가든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내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이라며 깊은 죄책감을 가졌다. 관계 속에서 사랑과 믿음을 경험하기보다 우울과 불안을 경험했고 그래서 상담을 지속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일주일에 1회, 한 달에 4회, 2년 동안 한차례도 빠지지 않았으며 단 1분도 지각하지 않았다.
상담이 끝나면 명치에 강펀치를 맞은 듯 아프기도 하고, 너무 슬퍼서 집에 오는 내내 울기도 했다.
때로는 지지와 격려를 받고 힘을 내기도 했고, 때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그에 대한 기록이 브런치 북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2년을 한결같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났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동기는 상담을 받으며 애착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정서적 고통을 절대로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통스럽고 끔찍한 인생을 아이들이 살지 않길 진심으로 너무나 진심으로. 바랬다.
그 반대의 측면에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죄책감, 즉 관계 속 어려움은 나 때문이라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놀이치료를 시작하며 놀이치료 선생님께 아이의 기질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엄마의 역할이 힘들었던 것이 나 자신의 내면적 어려움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는 difficult child의 기질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결핍감은 없다고도 하셨다.
살아오며 발생한 관계 속 어려움은 전적으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자신을 비난하고 막말을 퍼부어대며 차라리 죽어버리든지, 아, 넌 죽을 용기도 없지? 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어렵게 느껴진다. 매일 공허와 싸우며 전쟁같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다는 것은 극도의 외로움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내가 그러한 정서적 통증을 가지고도 두 아이를 결핍 없이 자라나게 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선생님의 말대로 너무나 잘 해왔다는 걸,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는 걸. 다음 주에 꼭 전해야겠다.
나 자신에게 축하의 박수를 열렬히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