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권리

by 흔들리는 민들레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간다. 어떤 병원에 갈까?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고 팔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간다. 피부가 아프면 피부과에 가고 코나 귀가 아프면 이비인후과에 간다. 아프면 아픈 곳을 치료한다. 다리가 아픈데 내과에 가거나 배가 아픈데 정형외과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마음속에서는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정형외과에 가는 일이 일어난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마음은 결국 치료되지 못하고 계속 아프기만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반복되는 마음만의 방식 때문이다.


거울을 보지 못하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코 옆에 뾰루지가 났는지 확인할 수 없듯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자꾸만 반복하는 마음의 방식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그곳을 들여다봐야 함을 의미한다. 아픈 곳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치료할 수 없고 나아질 수 없다. 자꾸 소화가 되지 않고 배가 아플 때 내시경을 하는 이유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배가 아픈데 다리를 만져보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복통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화가 날 때 내 안의 분노라는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분노를 유발한 타인을 미워한다. 마음이 슬플 때 내 안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슬픔을 느낀 상황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곧 배가 아픈데 정형외과에 가는 일과 같다. 그렇게는 아픈 감정이 나아질 수 없지만 마음은 그런 방식을 반복한다.


아픔과 통증은 그러므로 마음의 신호이며 표현이다. 그것은 통제하거나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컷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치료를 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 마음이 자주 아프다면 어디가 아픈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픈 곳을 치료해주어야 한다. 다친 곳에 빨간 약을 바르듯이,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밴드를 붙이듯이 내 상처는 내가 보듬고 치료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픔에 대한 권리가 있다. 아픔을 느낄 권리 그리고 그 아픔으로 자기 안에서 자주 반복하는 마음의 방식을 성찰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존엄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울 권리도 반드시 있다. 고통스러울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 역시 숭고한 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