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은 거부합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남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 같을 때 느끼던 소외감이 나를 외롭게 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어두운 피부를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하얀 피부가 미의 대표적인 이미지 그리고 일반적인 보통의 기준이었다. 까만 피부 때문에 놀림을 참 많이 받았다. 게다가 눈이 소처럼 커서 외국인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먼 조상중에 외국에서 건너온 분이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국적인 외모 덕에 어딜 가나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얘길 듣지 않는다. 왜 그런지를 생각해봤는데 tv에 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 같다. 이효리, 화사, 제시 씨처럼 구릿빛 피부를 가진 분들이 왕성히 활동을 해주시는 덕에 한국인이라고 해명할 일이 줄어들어 편해졌다.















미의 기준이라는 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이라는 기준도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의 그림들은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하며 미술계는 더 이상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고 초현실주의 그림들이 장했다.

보통이라는 것은 언제나 변하고 어디에 기준점을 두느냐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기준과 보통이라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세이를 쓴다면 에세이만의 형식이 있고 소설을 쓴다면 소설의 형식이 있는데 그런 형식을 벗어나며 써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유로워질 필요성을 느낀다. 스스로 내가 쓴 글을 검증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성도 느낀다.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많은 창작물들을 생각해보면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창작을 방해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자유롭고 싶은 예술가다.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의 흐름과 나의 내면적 목소리를 따려 한다.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가볍게. 나는 예술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