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본질을 탐색하게 되었다.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산이 험준하면 골짜기도 깊다.



이 험준하면 골짜기도 깊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 옮겨 적을 수조차 없는 많은 일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외국에서 몇 개월을 체류하기도 했고, 하필 그 몇 개월 사이에 진도 5. 몇의 지진도 체험했으며, 또 본의 아니게 때마침 임신 8개월이었으며 그리고 또 본의 아니게 여러 번 병원의 신세도 져야 했다. 인생의 시기마다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무난하거나 무탈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 했다고 해야 할까 기구했다고 해야 할까... 기구까지는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평범한 것 같지도 않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벌어진 그 일이 훗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또 어떤 의미로 완성되는지를 보게 될 때면 가끔 소름이 돋는다.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어떤 일들이 후에 말도 안 되는 긍정적인 일을 불러오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후에 말도 안 되는 저주 같은 일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들을 보며 인생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








우울증 이후에.


우울증 이후에


우울증을 겪기 전에는 짐작하고 느끼면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었다면 우울증을 통과하고 난 후, 많은 것들을 말과 글로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우울이 마음을 더 깊이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도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과 생각은 표현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있다. 반드시 있다. 그리고 모든 감정과 생각들은 제각기 상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


삶에서 얻은 경험과 우울을 통한 감정과 생각의 탐색이 만나,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볼 수 있는 시각이 발달되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많은 것들은 현상이며 그 욕망들의 밑바닥에 현상과는 다른 본질이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의 탐색으로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안다>라고 믿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로써 나를 적절하게 경계한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탐색하는 일.


나의 내면을 탐색하는 일.


나의 내면을 탐색하는 일은 현상보다 본질을 탐구하는 일이었다. 현상으로서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면을 탐색하며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 비해 열등감과, 타인과의 비교가 줄었다. 그렇지만 감정들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열등감, 소외감, 고독, 우울, 슬픔, 분노들이 때때로 올라올 때면 자각하려고 한다. 자각했다면 그것을 현상으로 보고 그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많은 부분이 성장과정에서, 삶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들이었고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본질을 탐구하는 일은 매일 매 순간 깨어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금방 세상의 물결에,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고 만다. 때는 내가 원하는 나와 멀어지고 마음의 고요와도 잠시 이별해야 한다.


본질을 탐구하는 일은 감정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감정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보고 하마라고 결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감정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를 탐색해 보면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내면은 정말 신기하다. 어쩌면 인간은 이렇게도 자기를 모를 수가 있나, 남의 차를 자기 차라고 몰고 다니며 그게 자기 차인 줄 단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내 얘기다.)

본질에 대한 탐구는 나뿐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도 변화키기에 충분했 그래서 관계들도 조금씩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