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들로 인해서 마음앓이를 많이 했다. 거의 전 생애동안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정엄마의 끊임없는 무리한 요구들(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부모나 배우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아닌가. 가장 가깝고 밀접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닌가...
나는 그 관계들에서 수동적이었다. 그렇게 형성이 되었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고 한다.
중요한 대상과의 <애착> 형성이 이후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재방송된다. 다시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것을 재방송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친정엄마가 증오스러웠다. 자라는 모든 순간에 품었던 증오와 분노였으나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내 심리상태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간 과정이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에 담겼다.
엄마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녀는 내 인생을 망쳤다. 철저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그것도 아무런 자각 없이 그랬다.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게 더 화가 났다. 자식이므로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사랑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 그녀에게 보였다. 말과 행동이 다른 엄마의 모습이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일관된 느낌,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항상 불안했고 눈치 봐야 했다. 말과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지속적으로 상반된 메시지가 날아왔으므로. 늘 요구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난했으므로..
엄마같은 배우자.
재방송 = 엄마 같은 배우자.
그런 배우자를 만났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를
반복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메시지를 주는 배우자, 늘 요구적이고 평가하는 배우자, 그래서 눈치 보게 만드는 배우자,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하게 만드는 배우자.. 자신의 행동에는 전혀 책임이 없고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배우자... 그런 배우자를 만났다.
남편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며 가족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수시로 과음을 하고 것도, 자기가 피곤한 것도 모두 가족 때문이라고 했다. 늦게 귀가하는 것도 가족 때문이고 힘든 것도 가족 때문이었다.
어렵게 살던 나를 구해준 것이 자기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녹음기 같았다. 친정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다시 재생하는 녹음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 전혀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 자기만 말하고 자기 말만 들어야 하는 사람..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정엄마처럼.
더 이상의 재방송은 싫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 했다. 엄마의 재방송 말고 나의 생방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