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 정의하는 관계에서 질문하는 관계로.

우울증 치료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생방송 제작과정


생방송의 제작과정 - 질문 그리고 대답.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상대방이 뭐라고 하든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친정 엄마와의 관계에서 그러했듯, 남편의 기준과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 애썼다. 우울증을 겪으며 그이 친정엄마와의 관계의 재방송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 그때 쌓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이상 그 방식을 계속 지속할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고 일정정도의 세월을 살아온 성인은 자기만의 세계가 견고해지므로 지시나 요구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된다. 외부적인 동기는 지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이 결혼을 지속하고 싶다면 내적인 동기가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아내는 왜 이혼하자고 하는 것 같은지?

그럼에도 이 결혼을 지속하고 싶은지.

지속하고 싶다면 왜 지속하고 싶은지?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수정해야 하는지.

당신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당신의 삶 속에서 가족이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어떤 남편이 되고 싶은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지.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지.

아이들이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 부모인 우리가 해주어야 할 일은 어떤 것일지.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그 모든 역할 너머에 누가 있는지. 누가 있기를 바라는지.

당신은 누구인지.

당신은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로서만 살고 싶은지 아니면 그 너머의 당신을 기억해내고 싶은지.

당신은 생방송을 원하는지 재방송을 원하는지.

당신의 배우자, 아내는, 누구인 것 같은지.

남편이 나를 무례하게 대할 때 싸우기도 해야 했고 그런 순간에는 물러서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제 그런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부의사를 확실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음속으로는 이미 이별을 전제해 놓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마음이 힘들 이유도 복잡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의 대답



그녀의 대답


친정엄마와 거리 두기를 했다. 걸려오는 전화를 되도록 받지 않았고 오라고 하셔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가지 않았다. 수시로 날아오는 많은 요구들도 거부했다. 리고 녀에게 질문했다.

내가 엄마에게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엄마는 말했다. 니 인생 잘 살라고. 애들 잘 키우고 건강하게 잘 살면 됐다고.


고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만 다시 전화가 걸려와 이런저런 무리한 요구들을 하셨다. 그럴 때면 또 거절해야 했다.

엄마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죄책감을 안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조차 없는 것임을 안다.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죄책감, 그로 인해 좌절된 의존욕구, 채워지지 않은 사랑.. 그것이 저장강박으로 집안에 물건을 채우며,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방식으로 굳어져가는 것을 안다. 러나 가슴 아프게도 나는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








해답은 자신안에



해답은 자신 안에.


남편에게는, 물론 질문하자마자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듣기 위한 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결혼을 지속하려는 그의 마음은 알고 있었으므로 구체적인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그 동기를 찾아보기는 바랐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대도 그의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앞으로 자기만의 대답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한 질문은 내게 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나만의 답을 해 나갔다. 나만의 대답을 살았다. 그들도 그러기를 바라면서..

나는 우울증으로 깨어났고 주변인들도 깨우고 있다. 일어나라고, 정신 차리라고.

우리는 다만 아픈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흔들어 깨워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