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학대를 경험한 자의 담판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절대 타협되지 않는 그런 때



절대 타협되지 않는 그런 때


우울증을 통과하며 여러 가지를 깨달았지만 그중 가장 커다란 깨달음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또 찾아오고 다시 찾아오고 계속 찾아온다는 것, 언제까지고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억누르는 것이나 회피하는 것도 잠깐의 방편일 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감정을 그렇게 억누르려고 했으니 당연히 병이 되고야 말지 않았겠나.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관계도 중요하고 사회생활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내가 아프다면, 나를 잃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어떤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글과 말로 표현했다. 때로는 껄끄러운 이야기까지 표현했다. 나는 적절히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주위에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자리에서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나 모든 관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의해서 말을 아낀 것이 아니다. 말하는 이의 의견을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존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누군가는 나의 그런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이나 말에 동의하고 동의를 넘어 복종까지도 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안에 무언가가 탁,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가 탁 하고 걸리는 느낌, 넘어가지지 않는 느낌이 들 때는 참을 수 없어 말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쟤 뭐야? 누구야? " 하고 쳐다본다.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시정해야 할 점을 적극 이야기하니까. 내게 그런 성향이 있다. 굽혀지지가 않을 때, 절대 타협되지도 않는 그런 때가 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


복수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정서적 학대를 겪으며 자랐다. 나를 훈육했던 사람은 대략 일고 여덟 명이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훈육의 방침을 가지고 있었고 각자 다른 관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일관성도, 안정감도 전혀 없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있었지만 그녀는 양육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를 양육한 것은 그녀의 형제들이었다.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 아니라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어디에서 다른 관점의 훈육이 날아올지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했고 전혀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화풀이 대상인 것 같은 느낌, 자책감, 수치심, 슬픔, 분노들이 언제나 내 안에서 뜨겁게 끓어오르고 충돌했다. 화가 나고 슬펐다.


가장 증오스러운 대상은 엄마였다. 그녀는 나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았다. 내가 혼나면 그들 옆에 서 있었다. 내가 울면 그들 옆에서 내가 우는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들은 네 부모야. 그들을 아버지라고 생각해.(복종해)



/ 왜 그랬어? 왜 날 보호하지 않았어?

/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그때는 이모가 화가 나서 그랬지 돌아서면 안 그래.

/ 화가 나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야?

/ 그건 아니지만 걔가 성격이 원래 그래.. 그래도 나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지 아니?

/ 내 앞에서 그 사람들을 두둔하지 마. 엄마의 딸이 그 사람들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지금.

/ 그래도 워낙에 의지할 곳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

/ 엄마가 그랬지? 나이 먹고 늙어서 의지하는 거라고. 안 그러면 살 수가 없다고. 그러면 젊을 때는 안 그랬어? 젊을 때는 독립적으로 살았어?

/ 아니었지...

/ 엄마는 평생을 그러고 살아. 평생을 그렇게 굴욕적으로 의존하면서 그 사람들한테 하대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엄마가 부모로서 보호했어야 할 당신 자식 하나도 전혀 보호하지 않았어. 그들이 당신 딸에게 상처를 줄 때도 엄마는 모른 척했어. 폭력을 휘두를 때도 엄마는! 나를 보호했어야 할 엄마는! 날 보호하지 않았어.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내가 그 안에서 몸 담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거냐고.

/ 그래서 의지해서 살아가니까 잘 살았네?

/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라도 살고 있는 거 아니겠니?

/ 그래서 엄마는 형제들에게 의지하며 잘 살았네 그렇지? 그런데 나는? 나는 누구에게 의지했을까? 엄마한테 의지했을까?

/ 네가 말을 안 하니까 나는 전혀 몰랐지.

/ 핑계 대지 마. 엄마가 살아야 하니까 형제들한테 의존하느라고 날 모른 척한 거지. 어떻게 몰라. 나도 자식이 둘이야. 학교 갔다 와서 표정만 안 좋아도 신경 쓰이는데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가 있어!

/ 몰라서 그런 건 잘못이 아니잖니?

/ 모르는 것도 잘못이야.

/ 그래서 이제 와서 어쩌라고.

/ 그랬으면서 이제 와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소리가 나와? 어떻게 그렇게 빚쟁이처럼 집 사달라 요구하고 뭐 사달라고 요구를 해? 어떻게 그래? 미안해해야지 나한테. 양심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안해해야지. 난 엄마의 남편도 부모도 아니야. 난 엄마의 자식이야!!

/ 그래도 이렇게 살잖아? 네가 이만큼 컸잖아? 걔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못 살았을 거다.

/ 칼로 찔러서 나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야. 방망이로 얻어맞아서 생긴 상처만 상처가 아니라고.

/ 나는 그래도 네 오빠한테(동복오빠) 그렇게 말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 못 가르쳐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걔는 그러더라. 어떤 부모가 완벽하냐고, 새엄마 밑에서 자란 걔는 그렇게 말하더라. 근데 너는 나를 원망하기만 하니?!

/ 그 오빠가 왜 잘 자란 줄 알아? 엄마가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난 엄마가 키워서 이렇게 됐고.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이모 삼촌들이랑 행복하게 사세요.



해본 적 없던 말을 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상처를 받았는지 말해본 적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보호해줘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아이가 부모를 보호하나. 보호는 내가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다. 부모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이였고, 엄마의 부모는 이모와 삼촌들이었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그들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라고.


자라면서 무수히 받았던 기준도 없고 일관되지도 못했던 훈육들에 분노가 쌓여갔고 저항었다.

내가 저항할 때, 엄마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버림받을까 봐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미울까... 실컷 쏟아내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권위를 걷어차는 나만의 길

권위를 걷어차는 나만의 길


우울증을 통과한 이후로 나는 많은 부분에서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다. 시댁에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의 내 모습과 달라졌기 때문에 저항들이 있었고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권위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결심, 솔직히 표현하겠다는 결심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권위를 걷어차려는 노력, 굴종적이고 굴욕적인 위치를 거부하려는 노력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 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울증을 통과한 이후 그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