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자기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못한다. 자기감정이나 욕구에 대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부모로부터, 혹은 가장 가까운 양육자로부터 적절히 수용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감정이나 욕구를 편하게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왜곡해서 표현하게 된다. 어떻게 왜곡될까? 분노하거나, 지나치게 참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수동공격을 하거나, 깊은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갖게 되거나 등등,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하여 전혀 다른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게 된다. 결국 상대방은 왜곡된 메시지를 받았으므로 원래의 뜻을 오해하고 만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상대방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감정이나 욕구에 대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받은 메시지를 자기만의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한 번 더 왜곡한다. 그러면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된 두 사람의 메시지는 진짜 서로가 원하는 메시지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고 결국 메시지는 엉망징창이 된다. 두 사람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다. 개떡같이 말하면 그냥 개떡같이 알아들을 뿐이거나 혹은 개떡과는 차원이 다른 신발 같은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찰떡같이 표현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것
찰떡같이 표현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것.
우울증을 통과하며 알게 된 것은, 내가 솔직한 감정과 욕구를 왜곡하여 개떡같이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매일 감정이 집중적으로 몰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일도 바쁘고 손님이 많은 가게에서 더 빨리 배우지 않나. 하루에도 감정 손님이 무지하게 찾아왔다. 아르바이트생은 그래서 엉덩이를 붙일 시간도 없었다. 대신 일을 빨리 배웠다.
감정과 욕구를 자각하고,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에게도 어쩌면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감정을 수용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내 감정을 내가 표현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내가 표현한다는 것.
우울증을 통과하며 손님 많은 가게에서 일을 배우는 아르바이트생처럼 감정을 자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개떡같이(왜곡해서) 말하는 대신, 찰떡같이(왜곡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찰떡같이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감정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파악하고 본질을 전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은 내가 아니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1차원적인 표현에 그친다. 찰떡같은 표현은 이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게 찰떡이다.
찰떡같이 표현하면 상대방이 내 감정이나 마음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크게 속이 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내 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솔직은 무례함이 아니다. 내 감정에 집중하며 이해하게 되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나의 감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감정도 자기 자신에게는 소중하리라는 공감의 마음이 생겨났다. 때로 그 자신은 나처럼 그것을 모를 때도 있을 거라는 동감 어린 마음도 함께 생겼다. 나는 전보다 더 찰떡같이 표현하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