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는 길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당신은 뉘신지?

너는 누구인가?


참 오랜 시간 동안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었다.

대체 나는 누구였을까... 사십여 년을 살아오면서도 내가 누군지를 몰랐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 누군가가 씹던 껌이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신발을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떠나오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우울증을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나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떠나오던 그 사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신발 밑창에 붙이고서 늘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그 사람... 그 사람은 아무도 아니었다. 누구도 아니었고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던 생명체. 딱 거기였다.






너는 누가 될 것인가


너는 누가 될 것인가?


철학에서 던지는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에게 던지는 함정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은 <너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너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의 비틀림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떨어지지 않던 그 질문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그랬으므로 나만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었다.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것은 목표다. 글을 쓰겠다는 것도 목표다. 또 공부를 해서 어떤 성적을 받겠다는 것도 목표다. 몸무게를 얼마큼 줄이겠다는 것도 목표다.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목표이고 어떤 집을 어디에 사겠다는 것도 목표이다.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것도 목표다. 세상에는 천 가지 만 가지의 목표들이 마구 날아다니지만 언제나 목적은 목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이란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누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했다. 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떻게>라는 고민으로 <목표>들을 건설했고, <목표>라는 건축물들 사이를 배회하며 <목적>을 정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들이 헤매임과 서성임, 망설임, 슬픔, 분노, 두려움들에서 나왔다. 기쁨, 행복, 희망 같은 건설적인 감정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여하튼 그랬다.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는 길.


내 삶의 목적은 부유함이나 편안함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기준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난 일들을 다 잊고 나마스떼 하며 모든 번뇌를 놓아버리는 것도 아니다. 종교인이 되는 것도, 작가가 되는 것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매 순간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삶의 목적을 정하고 나니 고통과 괴로움들이 견딜만해졌다.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했던 날들이 지나가버렸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어딘지도 모르고 길을 잃은 것 같아 불안했던 날들이 목적지를 알게 되니 여유롭고 차분해졌다. 넘어져 울다가도 문득, 아, 이건 내 목적이 아니지, 깜빡했네, 라며 일어나서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목적이 부재한 목표는 언제든 붕괴되어 버릴 빈약한 집이었고 나는 무수한 집들을 붕괴시켜 버리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무수한 상실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옹기장인이 무수한 부서짐을 마주해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