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길을 찾아 나서던 여러 날들 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이 쭈구리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쭈구리들은 정말, 정말... 최악이었다. 열등감, 수치심, 죄책감, 갈망, 분노, 슬픔, 외로움, 등등등... 다 열거할 수조차 없는 쭈구리들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만 자란 양의 털이 한 번도 손질되지 않아 엉망으로 엉켜버린 것처럼 그랬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이라는 듯이 아닌데? 나 아닌데? 그거 아닌데? 라며 아닌 척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도 계속 아프니 도저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졌다. 마치 어린 시절 충치를 대하던 듯이, 아프지 않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그 무시무시한 의자에 누워졌던 그때처럼. 그 밝은 빛, 아무것도 감출 수 없이 모든 것이 다 드러나버리던 차가운 우울증의 빛 아래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말았다.
모든 것들이 붕괴되어버린 나날들
붕괴된 날들-부정적인 감정들의 대잔치
명절마다 하던 티브이프로그램 중 그런 게 있지 않았나? 올스타대잔치라고. 부정적이라고 여겼던 감정들이 올스타대잔치처럼 총망라되었다. 자기들끼리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벌칙도 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육대 같은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티브이 프로그램이라면 꺼버리기라도 하지 이건 뭐 24시간을 쉬지 않고 내 안에서 생방송을 해댔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마음의 올스타대잔치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싫다.. 최악인데? 진짜 싫다... 최악인데? 대단히 싫다.. 최악인데?'
나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싫을 수가 있을까? 남을 그렇게 미워해 본 적이 있었나? 남도 그렇게까지 저주를 하고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은 안 보면 되니까(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나 자신은 그게 안되지 않나. 싫은 정도라면 차라리 나을 지경이었다. 혐오스러웠으니까. 어디선가 계속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버려. 그냥 죽어. 재활용도 안될 이 쓰레기야.. 하루하루가 모든 게 다 붕괴되어 버린 전쟁 같은 나날들이었다.
쭈구리를 껴안는 법?
쭈구리를 껴안는 방법?
나는 우울증을 통과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쭈구리를 없애는 나만의 방법이나 비법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런 특별한 비법은 있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많은 자기 계발서나 위로를 주제로 한 책들에서는 마치 그런 것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그런 비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이 자존감에 대해 많은 강의들을 하시지만 그것이 쭈구리의 삭제를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하면 쭈구리를 더 잘 다룰 수 있는지에 관한 의견들이다. 쭈구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쭈구리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증을 통과했다고 해서 쭈구리들과 영영 이별한 것은 아니다. 뿅 하고 갑자기 자존감 뽕필이 충만해져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우울증의 치유는 인간개조가 아니라 인간성장이다. 성장이란,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때때로 잠시 보이지 않는 것일 뿐
거기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 눈을 가리면 타인에게 내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순진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있음을 아는 '성숙'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우울증을 통과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열등감, 누군가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 그런 나에 대한 수치심과 춤을 춘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그것들을 생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쭈구리를 껴안지 않는다. 다만 쭈구리를 지니고 있는 나를 껴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