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혼돈을 넘어

다니엘스

by 흔들리는 민들레




모든 잠재력은 가능성에 대한 도약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혼돈의 영화 속에서 더욱 명징하게 다가왔습니다.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단지 판타지적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수많은 가능성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갈래길의 분기점들을 상징하죠.




멀티버스의 혼돈과 에블린의 내면을 압축한 상징적 이미지




두려움의 혼돈을 뚫고 직면하는 내면의 가능성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에블린은 세무 조사에 시달리는 이민자이자, 가족과의 갈등을 겪고 있는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는 딸과 남편을 쉽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건 그들 모두가,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매 순간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려움은 혼돈을 낳고, 혼돈은 의미를 휘발시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두려움을 직면하고 넘어설 때, 우리는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가 됩니다. 에블린이 일상 속 세무서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들이닥친 혼돈과 변화를 알리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에블린이 일상 속 세무서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세계를 붙드는 다정한 무기




웨이먼드의 친절함은 나약함이 아닌, 용기였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말은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절망의 언어입니다. 딸 조이가 만든 '블랙 베이글'은 그 허무의 정점이죠. 베이글의 중심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검은 구멍뿐이니까요. 그러나 그 말에 대한 진정한 응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지 가족애나 혈연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전체에 대한 사랑이며,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 안에서 손을 내미는 태도입니다.




에블린은 수많은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자신이 그토록 한심하게 여겼던 남편의 다정함이 실은 치열한 생존의 방식이었음을, 그리고 딸의 냉소 뒤에 숨겨진 깊은 허무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됩니다. 마침내 에블린은 베이글 한가운데의 텅 빈 구멍(허무)을 보는 대신, 그 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 전체를 껴안는 법을 배웁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죠. 그 순간, 날카로운 공격으로 가득했던 멀티버스는 혼돈의 바다에서 연결의 무대로 바뀌게 됩니다.




내가 친절하다고 해서 순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에요.









지금 여기,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피어나는 완성




존재자체로 의미를 갖는 순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의미 없는 우주의 파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부질없는 세계 안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것인가?"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혼돈 속에서도 두려움을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우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용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삶의 의미는 두려움을 넘어설 때 비로소 창조됩니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을 가두던 한계를 넘어서고,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순간에 펼쳐집니다. 살아내지 못한 삶이나 아직 살지 못한 삶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의미로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Everything(모든 것), Everywhere(모든 곳), All at Once(동시에)’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분열된 가능성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용기에서 비롯된 완성입니다.




조이와 에블린이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존재의 껴안음.








혼돈 속에서 고요한 속삭임을 건네는 천재 듀오 다니엘스







이 영화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 일명 ‘다니엘스(Daniels)’라 불리는 듀오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그들은 숨이 찰 정도로 빠르고 쉼 없는 컷 전환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의 과잉과 의미의 홍수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하지만 그 휘몰아침의 끝에는 언제나 돌처럼 고요한 장면이 있고, 그 정적 속에서 “친절하라”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이 극적인 전환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기어이 의미를 창조하고자 하는 그들의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016년 《스위스 아미 맨》으로 데뷔한 이들은 이 작품을 통해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총 7관왕을 거머쥐며 전 세계에 다정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https://youtu.be/vOXJySPfMJY?si=851zAfavUz5NIz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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