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이 리뷰는 결말을 포함합니다.)
이 영화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이야기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욕망을 대상화하며 살아온 삶과 존재를 과정 속에서 정립해 온 두 존재의 대비에 관한 기록입니다. 영화는 전반부 빅터의 서사와 후반부 피조물의 서사를 배치함으로써 이 대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한쪽은 과정이 생략된 규정 속에서 삶을 소비하고, 다른 한쪽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며 존재를 축적해 갑니다.
빅터의 어머니는 동생을 출산하다 사망합니다. 어린 빅터는 의사인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만, 그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일부러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믿게 되고, 그 상실은 우주의 한 조각이 뜯겨 나간 것 같은 감각으로 남습니다. 이 경험 이후 빅터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죽음을 극복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빅터에게 피조물은 처음부터 존재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존재를 원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했다는 결과를 증명해 줄 '대상'을 원했습니다. 피조물은 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적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피조물을 탐색하거나 관계 맺지 않은 채, 그저 '괴물', '지능 없는 실패작'이라 규정합니다. 이 규정들 속에는 오직 자신의 욕망만 있을 뿐, ‘너’라는 존재는 자리 잡지 못합니다.
그가 죽음을 정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을 끝내 수용하지 못했다는 고백과 같습니다. 빅터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대신 '죽음'과 관계를 맺는 인물이 됩니다. 그의 창조는 생명을 사랑한 결과가 아니라 죽음을 부정하려는 집착의 산물입니다. 그의 앎은 탐색과 관계를 거치지 않은 채 내려진 '과정이 생략된 규정'이기에, 그의 삶은 끝내 자기 것이 아니라 죽음의 것이 되고 맙니다.
피조물의 서사는 창조자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그는 세상을 정의하지 않고 탐색합니다. 면도칼을 만지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물과 나뭇잎을 느끼며 반응을 확인합니다. 그의 앎은 주입된 지식이 아니라 발견된 앎이며, 과정 속에서 축적된 지혜입니다.
눈먼 노인이 그를 향해 던진 “너는 내 친구야”라는 말은 어떤 의도나 규정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욕망 없는 관계 속에서 피조물은 비로소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빅터가 지능이 없다고 규정했던 존재는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깊이 '아는' 존재가 됩니다. 감정이 있기에 탐색할 수 있었고, 느꼈기에 관계 맺을 수 있었으며, 고통을 통과했기에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 있는 인간을 질투하며 고통의 영원성을 말하는 그의 고백은, 살아 있는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하고도 비극적인 문장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이 내 안에서 또렷해졌어.
사냥꾼은 늑대를 미워하지 않았고,
늑대도 양을 미워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들 사이의 폭력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
어쩌면, 나는 생각했어.
이게 세상의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세상은 네가 어떤 존재인지 그 이유만으로
널 쫓고, 죽이기도 하는 거라고
빅터가 죽은 뒤, 피조물은 얼음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던 배를 밀어냅니다. 그 배는 비로소 자신의 길을 떠납니다. 피조물은 눈물을 흘리며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는 빅터와의 관계마저 하나의 과정으로 살아낸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서사를 설명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지와 편집의 리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본질적 차이를 시각적 체험으로 구현해 냅니다.
빅터의 서사: 빠르고 단절된 몽타주, 결과만 튀어나오는 편집을 통해 '과정이 생략된 규정'의 삶을 시각화합니다.
피조물의 서사: 느린 호흡, 반복되는 촉감과 시선, 움직임을 통해 '탐색과 축적'의 과정을 이미지로 쌓아 올립니다.
결국 영화는 “욕망은 규정하고, 욕구는 탐색한다”는 명제를 몽타주로 먼저 체험하게 만듭니다. 빅터가 죽기 직전 피조물의 과정을 듣고서야 "아들아, 그저 살아가라"며 사과하는 장면은, 규정의 감옥에 갇혔던 창조자가 마침내 존재의 과정을 인정한 순간입니다.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명작이 남긴 해방의 메시지입니다.
**최근에 보았던 작품 중 단연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예술적이며 고전적인 명작입니다.
1964년 멕시코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괴기 영화와 괴물 피겨, 특수분장에 깊이 빠져 지냈습니다. 멕시코에서 특수효과·분장 일을 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뒤, 1993년 장편 데뷔작 ‘크로노스’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할리우드와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하면서, 장르 영화의 문법 안에서 정치·역사·폭력과 트라우마를 다루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멕시코 동료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함께 ‘쓰리 아미고스(Three Amigos)’로 불리며 2000년대 이후 스페인어권 감독들의 약진을 대표하는 인물로 언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