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글레이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지휘관 ‘루돌프 회스’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다룹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다루면서도 가스실이나 학살의 현장을 단 한 번도 직접 비추지 않습니다. 대신 카메라는 수용소 담장 바로 옆, 꽃이 만발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회스 가족의 ‘꿈의 집’에만 머뭅니다. 관객은 평화로운 정원 이면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과 굴뚝의 연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지옥을 목격하게 됩니다. 관객은 그 극명한 장면들 사이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과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Hedwig)**에게 이 집은 포기할 수 없는 지상낙원입니다. 헤트비히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와도 정원을 가꾸고 손님을 초대하며 안락함을 만끽합니다.
관객은 주인공들에게 괴리감을 느낍니다. 그 괴리감의 본질은 “나는 알고 있는데, 그들은 모른다”는 인식의 비대칭에 있습니다. 관객은 이미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굴뚝의 연기와 정원의 평온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비극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일상의 안락함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이 영화는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실체를 드러내며, 자기중심적 감각에 매몰되어 윤리적 인식을 상실한 인간의 습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 세계는 인간의 감각이 오직 개인의 욕구에만 집중된 공간입니다. 인물들은 먹고, 입고, 사랑하고, 자녀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감각은 생존과 쾌락이라는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타인을 인식하는 감각은 점점 퇴화합니다. 욕구는 채워지는 순간 사라지고 다시 결핍으로 돌아오기에, 인간은 그 순환 속에서 공허를 경험하며 결국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의존하게 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의 폭력은 단순한 살인 행위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허를 견디지 못한 인간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치르는 잔혹한 의례로 작동합니다. 이 폭력은 분노나 증오의 폭발이 아니라, 윤리적 감각이 결여된 인간이 만들어낸 기괴한 일상의 연장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결코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정치 역시 인간의 욕구와 공허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욕구에만 천착한 사회는 결국 타인을 혐오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합니다. ‘이민자’, ‘좌파’, ‘특정 국가의 사람들’ 혹은 그때그때 급조된 새로운 적들까지. 그들은 모두 욕구의 방향을 뒤틀어 공허를 덮기 위한 표적이 됩니다. 정치가 인간의 윤리적 인식이 아니라 욕망의 언어를 대변하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다시금 타인을 파괴하는 것으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게 됩니다.
결국 영화는 악의 '의도'보다 윤리적 '인식의 결여'에 주목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감정이 둔해서가 아니라, 내게 감각이 있듯 타인에게도 감각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자기 욕구에만 제한된 집중이 어떻게 윤리의 상실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타자를 지운 채 자기 욕망만을 확장하고, 그 결과 자신이 만든 폐쇄적인 세계 속에서 점점 더 무감각해집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고통을 직접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우리 시대의 감각적 무감함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고통은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연결감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냉정하게 묻습니다.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은 과거의 비극을 향한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서늘한 물음입니다.
결국 인간은 욕구의 순환 속에서 공허를 경험하며,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인간이 자기 욕구가 아니라 다른 인간을 인식하는 일의 가장 근원적인 어려움을 응시하게 만듭니다.
영국 런던 출신의 조너선 글레이저(Jonathan Glazer) 감독은 극장 연출과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거쳐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섹시 비스트》(2000), 《탄생》(2004), 《언더 더 스킨》(2013)이 있으며,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3)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소외와 인식의 경계, 그리고 감각의 부재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특히 정교한 시·청각적 실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어두운 층위를 탐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