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라는 국가의 성실한 납세자이자 보호자여야 했다. 친척들이 내게 던진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니?”라는 말은 축복이 아니라, 한 아이의 영혼에 채워진 정서적 수갑이 되었다. 사랑받아야 할 아이는 그 순간 엄마의 인생을 망친 ‘부채권자’가 되었고, 나는 그 평생의 빚을 갚기 위해 엄마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순종적인 부품이 되었다.
엄마에게 명절은 가족의 축제가 아니라, 자신의 ‘비련의 여주인공’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거대한 무대였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엄마의 숭고한 희생을 증명해 낼 가장 완벽한 소품이어야 했다. 사춘기 시절, 명절마다 독서실로 도망쳐 책 속으로 숨어들었을 때 엄마가 분노한 이유는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극적 무대에서 주연을 돋보이게 할 소품 하나가 멋대로 자리를 이탈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단 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아를 가질 수 없었던 시대의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결핍을 자녀에게 전이시키며 유착이라는 감옥을 재건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비극이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내 발목에 첫 번째 밧줄을 감았다. 그것은 ‘효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시스템의 가장 교묘한 가스라이팅이었다.
결국,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는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 길러내기보다 ‘시스템의 필요에 응답하는 부속품’으로 제조하는 데 열을 올렸다. 3부에서 논의할 ‘슬라임 사회’의 점액질은 이토록 친밀하고도 거룩한 이름(가족) 아래에서 처음 생성된다. 시스템은 개인이 스스로의 영토를 갖는 것을 방해하며, 끊임없이 타인의 감정을 대리 수행하게 함으로써 자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내가 엄마의 슬픔을 내 것처럼 앓았던 그 시절은, 국가나 사회라는 거대 시스템이 요구하는 ‘순응의 문법’을 몸소 익히는 혹독한 훈련소였던 셈이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타인의 결핍을 채워 넣기 위해 비워둔 거대한 ‘공터’였다. 그 공터에 엄마의 한(恨)과 사회의 기대가 무질서하게 들어차는 동안, 정작 내 이름으로 숨 쉴 공간은 한 뼘도 남지 않게 되었다. 훗날 내가 이 끈적한 유착의 늪을 빠져나오기로 결심했을 때 마주한 공포는, 단순히 엄마라는 한 개인을 잃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 온 유일한 질서이자 세계관이었던 ‘타인 중심의 시스템’ 전체가 붕괴되는 것에 대한 실존적 공포였다.
자기 대상(Self-object)화 - 하인츠 코헛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현상이다. 딸은 그녀의 무너진 자존감을 지탱해 줄 ‘기능적 부속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