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끝나지 않는 무대

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by 흔들리는 민들레


탈출구에서 마주한 대물림의 껍데기


결혼은 내 인생의 주어를 ‘나’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망명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국경을 넘어 내 가정 위로 자신의 껍데기를 씌우기 시작했다. 나의 양육, 생활방식, 심지어 내 아이들의 정체성까지 엄마의 검열 아래 놓였다. 엄마의 침범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점액질이 되어 내 일상을 다시금 잠식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엄마의 과거 아들(나와 아버지가 다른 오빠)을 찾아주었을 때 터졌다. 나는 그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선물까지 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왜 오빠를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지 않았느냐”는 불같은 질책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에게 이 재회 역시 자신의 인생을 품위 있게 마주하기 위한 연출이었으며, 나는 그 연출을 망친 ‘무능한 스태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는 나를 끊임없이 ‘나쁜 사람’의 위치에 박제했다. 그래야만 자신은 영원히 고귀한 희생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뒤집어쓴 껍데기는 엄마의 것이 아니라, 대물림되는 ‘결핍의 관성’이었다는 것을.




이것은 시스템이 한 개인을 지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결코 물리적인 폭력으로만 군림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죄책감을 투사하고, 상대가 그 낙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통해 정서적 식민지를 건설한다. 엄마의 각본 속에서 나는 언제나 이기적이고 냉정한 딸이어야 했고, 나는 그 역할을 수행하며 내가 진짜 누구인지 잊어갔다. 시스템이 부여한 배역을 나의 본질로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영토를 지킬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대물림되는 결핍은 마치 유전병처럼 내 가정의 공기 속에 떠돌았다. 내가 엄마의 각본에 저항할수록, 엄마는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화폐를 인질로 삼아 내 죄책감의 계좌를 압류했다. 이 끈적한 유착 관계 속에서 결혼이라는 망명지는 다시금 거대한 연극 무대로 변질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관객이자 연출자가 되어 진짜 자아를 질식시키는 사회. 나는 그 무대 위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이 연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무대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쥐고 있는 ‘배역의 대본’을 찢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멜라니 클라인 -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 멜라니 클라인(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상대에게 밀어 넣어 상대를 가해자로 느끼게 만드는 심리 기제다. 엄마는 자신의 수치심을 나에게 투사했고, 나는 어느새 그녀의 각본대로 ‘정이 없는 나쁜 딸’이라는 죄책감을 연기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1장. 비극의 여주인공과 소품이 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