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비명을 공적으로 기록하다.

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by 흔들리는 민들레


홀로 선 출판의 길



상담실에서 쏟아낸 눈물과 약 기운을 빌려 간신히 써 내려간 원고는 내 생존의 기록이었다.

나는 스스로 출판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직접 교정 교열 전문가를 찾아 문장을 다듬고, 온라인 홍보 전문가를 찾아 내 목소리를 알릴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태어난 첫 책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를 가방에 가득 담고 길을 나섰다. 독립서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내 책을 건넸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용기 있는 외출이었다. 엄마의 소품으로 살던 시절, 친척들의 눈치를 보며 독서실로 숨어들던 그 사춘기 소녀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독립서점의 서가 한구석에 내 책이 놓이던 순간, 나는 발목을 조이던 밧줄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 책을 직접 들고 서점 문을 연 행위는, 누군가의 수단이나 소품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의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평생 나를 가두고 있던 견고한 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책은 이제 내 가정을 침범하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의 손길을 막아 세우는 단단한 방패가 되었고,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이 되었다.


시스템의 거대 검열로부터 탈출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스스로 매체가 되는 것이다. 기존 출판 시장의 승인을 기다리는 대신, 내 고통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고 유통하는 이 과정은 자본과 관습이 설계한 궤도 밖으로 이탈하는 행동이었다. 시스템은 늘 개인의 비명을 정제된 언어로 가공하여 그 날것의 위험성을 거세하려 하지만, 나는 정제되지 않은 나의 진실을 세상에 직접 던짐으로써 시스템이 부여한 ‘침묵’이라는 배역을 파괴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행위는 사적인 고통을 공적인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종의 ‘주권 선포식’이다. 슬라임 사회의 점액질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나만의 고유한 언어다. 내 책이 서점의 서가에 안착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라는 기능적 수식어로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이 쓴 나의 연대기를 폐기하고, 내가 직접 나의 주어를 써 내려가겠다는 실존적 저항이었다. 폐허 위에서 길어 올린 나의 언어는 이제 타인의 침범을 막아내는 가장 단단한 성벽이 되었다.



자기 서사의 재구성(Restructuring of Self-Narrative) – 대니얼 맥아담스

대니얼 맥아담스는 인간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으로 정의했다. 타인에 의해 쓰인 비극의 '소품' 각본을 거부하고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기록하여 공적으로 공표하는 행위는 파편화된 자아를 통합하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서사적 재구성 과정이다.


대행자 자아(Agentic Self) – 알버트 반두라

사회인지이론의 거장 알버트 반두라는 인간의 주체성(agency)을 강조하며,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통해 "내가 환경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행동의 핵심 동력이라고 보았다. 출판사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출판인이 되어 책을 가방에 담고 서점 문을 여는 행위는, 무력했던 과거 자아를 밀어내고 삶을 직접 운전하는 주체적 자아(agentic self)가 완전히 깨어난 증거다.


목소리의 발견(Finding One's Voice) – 캐럴 길리건

비판적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은 여성이 타인의 관계와 돌봄의 굴레에 갇혀 자신의 욕망을 은폐하는 상태를 '침묵(silence)'이라 정의했다. 이 침묵을 깨고 자신의 고통과 비명을 공적인 활자로 변환해 세상에 내놓는 것은, 관계 속에 매몰되어 있던 개인이 비로소 '다른 목소리(different voice)'를 회복하여 독립된 인격체로 서는 실존적 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