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삶은 계란이 아니라 투쟁이다.

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by 흔들리는 민들레



이론과 경험이 만난 폭발



인생은 식탁 위에 예쁘게 놓인 '삶은 계란'처럼 매끄럽고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내고 내 목소리를 세상에 던진 순간 깨달았다. 삶은, 계란이 아니라 치열한 투쟁이며 그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투쟁의 과정에서 나는 친정 엄마와 남편의 기막힌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들이 내뱉는 날카로운 말과 기이한 행동들 이면에는 본인들조차 인지하지 못한 거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를 통제하려 했고, 남편은 자신의 무력감을 가리기 위해 방관을 선택했다.






공부를 하며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휘둘렀던 것은 '자신의 욕구에 대한 무지'였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이면에 어떤 결핍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본능적으로 뱉어내는 말들은 결국 나를 향한 조준 사격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길 잃은 방황이었다. 그 무지에서 비롯된 악의를 이해하고 나자, 비로소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 머릿속에서는 지식과 경험이 만난 폭발이 일어났다. 활자로만 존재하던 심리학 이론들이 내가 온몸으로 겪어온 고통스러운 시간들과 결합했다. 지나온 삶의 모든 미결 사건들이 '이해'라는 열쇠로 종결되었다. 나는 비로소 인간이 온전히 홀로 서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투쟁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내 손에는 '무지한 악의'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명징한 시야'가 들려 있었다.






사회는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명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개인이 무지할수록 시스템의 관습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반죽에 녹아들기 쉽기 때문이다. 엄마와 남편은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결핍을 성찰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시스템이 요구하는 ‘희생자’와 ‘방관자’의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다. 내가 이들의 무지를 읽어낸 것은, 나를 옥죄던 가족이라는 작은 시스템의 설계도를 조망한 것과 같았다.

진정한 투쟁은 상대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씌운 ‘무지의 각본’을 거부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자립’의 최종 단계는 바로 이 지점, 즉 시스템이 부여한 눈먼 죄책감으로부터 시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론과 경험이 만난 폭발은 내 안의 유약한 자아를 불태우고, 그 자리에 단단한 주체성을 세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의 방황에 휩쓸리지 않는다. 명징한 시야를 가진 개인은 더 이상 시스템의 부품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투쟁은 이제 고통을 견디는 단계를 넘어, 나만의 질서를 창조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1. 성찰 기능(Reflective Functioning)의 결여 - 피터 포나기(Peter Fonagy)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자신의 내적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무지'의 학술적 정의가 바로 이 성찰 기능의 결여(Lack of Mentalization)이다.


2. 미결 분쟁의 종결: 게슈탈트의 완결 - 프리츠 펄스(Fritz Perls)

과거의 상처나 해결되지 못한 감정(미결 과제, unfinished business)이 현재의 자각과 이해를 통해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게슈탈트로 정리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