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진실을 감당할 용기-직면

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by 흔들리는 민들레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깊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나는 그것을 ‘응시’라고 부른다. 응시는 물리적 실체 이면의 더 멀고 깊은 곳까지 보는 일이다. 나는 비로소 그들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응시하는 일은 아팠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외롭고 공허했다. 40여 년을 함께 지내온 이들이 단 한 번도 진정한 나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통해 자기 자신만을 볼 것이라는 예감은 내게 지속적인 상실감과 외로움을 주었다. 그들은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르며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일은 오히려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이 외로운 관계를 보기로 결정했다. 타인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 독립이라면, 자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지속적인 성숙을 이뤄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자립의 길 위에서 내 안의 또 다른 진실을 응시한다. 외면당하고 핍박받았던 어린아이가 내 안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외면하거나 흔들리고 넘어지고, 상처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타인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시하는 것처럼, 내 안의 그 아이 또한 매 순간 응시한다.


존재를 응시할 때는 무수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있어서 글로 토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거부하고 싶고, 이해하기 싫고, 수용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응시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내 숙명이자 운명임을.


나는 타인의 거울이 아닌, 오직 나의 이름으로 매일 매 순간 자립한다. 자립은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일이다. 그것은 수행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가 긴 투쟁을 지나 도착한,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 서글프지만 단단한 나의 평원이다.


시스템은 개인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찰하는 개인은 더 이상 타인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거나 죄책감이라는 점액질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한 외로움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한 ‘가짜 연대’로부터 탈출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주권적 고독’이었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욕구를 포기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시스템이 부여한 부품의 운명에서 해방되었다.


결국 자립이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목격하는 용기이며, 그 진실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감당해 내는 존재의 책임이다.






1. 직면(Confrontation)과 실존적 진실 - 로로 메이 (Rollo May)

실존 심리학의 거장 로로 메이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능력을 인간 실존의 가장 큰 용기라고 보았다. 진실을 감당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다움'을 획득한다. 로로 메이(Rollo May)가 말했듯 진실을 감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직면의 과정이다.


2. 내면아이(Inner Child)의 목소리와 자기 돌봄 - 앨리스 밀러 (Alice Miller)

앨리스 밀러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연구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안에는 상처받은 아이가 남아있다고 보았으며 이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며 슬퍼해 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아 성숙이 일어난다고 했다.

3. 자기-분화의 지속적 과정 - 머레이 보웬 (Murray Bowen)

보웬은 자아 분화를 '도착지'가 아닌 '평생의 과정(Process)'으로 보았다. 한 번 선언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내는 '수행'과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