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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씨 Jul 19. 2022

단 씨로 산다는 건

안녕하세요. 단땡땡입니다. 아, 반 씨 아니고 단 씨요. 단무지 할 때 단이요. 단 씨 처음 보시죠. 그런 말 자주 들어요. 본관은 강음이에요. 중국에서 온 성 씨로 알고 있어요. 단군 할아버지랑 같은 성 씨냐구요? 아뇨, 그 단은 성 씨가 아닌 데다가 한자도 다르답니다. 단군의 단은 박달나무 단(檀)이고 제 성 씨는 조각 단(段)이에요. ‘계단’할 때 그 단이요. 단 씨 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냐고요? 음, 단병호라는 정치인이 한 분 있다던데요. 뵌 적도 없고 잘 모르지만 아마 먼 친척이지 않을까요?


지겨운 레퍼토리다. 취업 면접이든, 소개팅이든, 회사 미팅이든, 새로운 모임이든 나를 소개하는 자리면 성 씨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과장 조금 보태서 수백 번은 말한 것 같다. 듣는 사람들 반응도 비슷하다. 한 번에 못 알아듣고 반문하는 경우가 제일 많고, 단 씨 처음 본다며 놀라는 사람이 그 다음이다. 농담 반 진담 반 단군 할아버지와 같은 성 씨냐고 묻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단 씨가 누구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꼭 있다. 김빠지는 대답이겠지만 내가 아는 단 씨는 내 가족과 친척이 전부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첫 진로상담에서 내 소개를 듣고 이런 말을 했다. “단땡땡 학생, 자네는 PD말고 방송기자를 꿈꾸는 게 좋겠어. 뉴스 말미에 KBS 단땡땡입니다- 하고 이름 석 자를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봐. 그게 자네 가문의 품격을 높이는 일일 거야.” 가문의 품격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희귀 성 씨의 장점은 사람들이 나를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름 석 자를 다 기억하지 않더라도 “단 씨”라든가, 최소한 “성 씨 특이한 사람”으로 사람들은 나를 기억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나의 존재가 쉽게 각인된다. 희귀 성 씨의 단점은, 안타깝게도 장점과 같다. 사람들이 나를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에게 잘 잊히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겠다. 동전의 양면 같다고나 할까. 기억되고 싶은 사람에게 잘 기억되는 건 좋은데 기억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잘 기억되는 건 싫다. 인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이른바 잊힐 권리를 갖고 싶을 때가 있다.


이름만으로 쉽게 특정된다는 것도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특정되지 않게끔 이름을 표기할 때 가운데 글자를 공란으로 두는데 나는 그 공란이 크게 의미가 없다. 김○영은 김나영, 김수영, 김지영, 김희영이 될 수 있지만 단○○은 이름을 다 가려도 그냥 나다. 대한민국에 나랑 이름 석 자 다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여러 명 있다고 해도 성별이나 나이같은 몇 개 요소만 추가하면 한사람으로 특정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SNS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만 나온다. 그게 싫어서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름 정보에서 성 씨를 다 뺐다. 사실 장점보다 단점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이름이 흔해서 고민인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생각을 고쳤다. one of them이 아니라 only one이라는 건 독자성이 있는 거니까. 내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걸 이름이 가끔씩 일깨워준다.


희귀 성 씨를 가졌다는 사실은 내가 나를 끊임없이 신경 쓰게 만든다. 어떤 무리에서든 특정되기 쉽고 사람들이 잘 기억하는데다가 심지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절로 언행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인지 자의식도 높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자의식 과잉이야말로 내게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제3자의 시각으로 나를 의식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 내면의 소리는 대체로 날이 서있다. 지금 내가 표현한 분노는 정당했나, 조금 더 참았어야 했던 거 아닌가. 모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치를 들이민다. 자아성찰에 그치면 건강하고 좋았겠지만, 이는 때때로 자기연민이나 자기혐오의 모습을 띈다. 모든 단 씨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단 씨 성을 가진 나는 그렇다.


언제부터 내가 나를 이렇게 의식했나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땐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은 김 씨, 박 씨, 이 씨인데, 나는 단 씨네. 우리 학교에 단 씨가 나 밖에 없다고? 어쩌면 나 좀 특별한 사람인 거 아닐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남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공교롭게도 공부를 썩 잘했다. 중학생 땐 학교 대표로 뽑혀 자치구 단위로 운영되는 영재 수업도 들었다. 시험을 보면 100점을 맞고 대회를 나가면 상을 받았다. 학창시절 받은 상장으로 내 방 벽면이 다 채워질 정도였다. 미술학원 선생님은 미술 전공을 고려해보자고 했고, 피아노 과외 선생님은 나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어떤 확신이 있었다. 역시 단 씨 성을 가진 나는 남들과 좀 다른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가 높아지던 무렵, 국제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다가 떨어졌다. 인생 첫 쓴 맛을 봤지만 괜찮았다. 삶이 너무 순탄하게만 흘러가면 재미없으니까. 그 마저도 영웅 서사의 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스스로의 특별함에 의문을 품게 된 건 대학교 입학 무렵의 일이다. 대학교 안팎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 멋지고 대단했다. 누구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했고, 또 다른 누구는 입학 전에 벌써 논문을 몇 편 쓰고 왔다고 했다. 그들 사이에서 좋은 학점을 받으려면 그동안 해본 적 없는 노력을 해야 했다. 졸업하고 학교 밖으로 나오니 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더 많았다. 2년여 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온갖 전형에서 고배를 마실 적엔 어쩐지 내가 평범하지 조차 못한, 기준미달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서울에 나 앉을 책상 하나 없고 1인분 밥값도 못한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다.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시작되었던 자의식이 자기연민을 넘어 자기혐오로까지 번지게 된 때가 이 시점이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기소개서 쓰는 일이 너무나 지겨웠던 어느 날, 도서관 앞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장나라의 Sweet Dream이 흘러나왔다. 어릴 때 즐겨듣던 노래였다. 가만 보자, 그 때 상상하던 20대의 나는 어땠더라. 멋진 옷을 입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멋진 옷 대신 후줄근한 옷가지를 걸치고 세계가 아닌 동대문 도서관 놀이터에서 그네나 타고 있었다. 유명은커녕 아직 직업도 없네. 욕이 절로 나왔다. 어린 시절 나에게 변명을 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 한 결과치고 별 볼일 없어서 미안한데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거든? 이 세상에 태어난 남다른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성 씨가 조금 특이할 뿐이야. 그게 다야. 비로소 어떤 중간지점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나 잘난 맛에 취해있던 10대를 지나 스스로가 너무 싫었던 20대를 거쳐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을 지나온 지금은 내가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제각기 특별하다는 걸 안다. 단지 나는 내 특이한 성 씨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상기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나 하나로 특정되는 삶은 여전히 조금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평생 나를 의식하고 신경 쓰며 살 것이다. 어떤 딜레마도 영원할 것 같다. 내가 나로 주목받는 게 무서워서 기어이 필명도 이름 없는 이름(무명씨, 無名氏)으로 지어 놓고 이런 기대를 한다.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 이 글을 계기로 내가 유명한 무명씨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유명하고 싶은데 동시에 숨어버리고 싶은 이 마음을, 김 씨들은 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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