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택의 이유> 다섯 번째 인물_지그재그 PM 박상진
인터뷰 <선택의 이유> 다섯 번째 인물은 지그재그(여성 쇼핑몰 모음앱) PM 박상진 님이다. 상진 님은 프레젠테이션 전문회사에서 근무 후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지그재그의 PM 역을 맡고 있다.
상진 님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입사원 1년 차, 꼬꼬마 시절의 나는 PPT를 잘 다루고 싶었다. 어느 날 기가 막히는 PPT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 클래스를 들으러 갔다. 오전에 시작한 수업은 하늘이 감감해질 무렵 끝났고, 꼬꼬마 신입은 '와... 저 강사는 진짜다' 혀를 내두르며 집으로 갔다. 그 날 배운 PPT 스킬은 10년을 쓰고도 남을 만큼 유용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날의 수업에서 신입은 사회생활을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는 밑천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오늘은 인생 띵작 클래스를 열어주신 상진 님을 만나 프레젠테이션 업계를 떠나 커머스 영역에서 PM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낯선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어떤 좌표를 따라왔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디 : 안녕하세요. 상진 님! 저희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나는 건 5년 만인 가요? 잘 지내셨는지 너무 궁금해요.
상진 : 와....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요. 저도 온라인으로만 소식을 접해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어요.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이유도 여쭤보고 싶었고요.
단디 : 곧 정식으로 인터뷰 기획 의도에 대한 글도 브런치에 써볼게요.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언제 흔들리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듣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상진 님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상진 : 저도 단디 작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오늘은 서로 궁금한 거 묻고 답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눠봐요.
단디 : 좋습니다. 지금 여성 쇼핑몰 모음앱 지그재그에서 PM으로 근무 중이시잖아요. 누적 다운로드 수, 일평균 사용자 수... 구체적인 수치는 몰라도 지그재그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서비스'인데요. 인지도 있는 서비스에 몸담고 계신 점이 부러워요. 상진 님이 처음 조인하셨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상진 : 제가 입사했을 때는 서비스 론칭 1년이 채 안됐을 시점이었고 전체 인원은 15명이었어요. 성장 가능성 있는 서비스라고 판단했는데, 지금은 200명 조금 안 되는 규모로 성장했네요.
단디 : 와... 15명에서 200명이요. 회사의 성장과정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정예 멤버시군요.
상진 : 고인 물이죠. (웃음) 회사가 계속 커지면서 입사 이후 총 4차례 이사를 했어요. 그때마다 예전에는 없던 부서도 생기고, 더 좋은 시스템도 생겼어요. 스타트업인 만큼 변화가 역동적이라서 재미있어요. 가끔은 야근할 때 사무실을 둘러보며 '내가 이 변화를 잘 따라가고 있나' 하는 감상에 젖을 때도 있어요.
단디 : 지나오신 행보가 너무 궁금해요. 현재 상진 님이 맡고 계시는 지그재그의 PM은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인가요?
상진 : 지그재그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개선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위치라고 봐주시면 돼요. 저희 내부에서도 PM이라는 직무가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닌데, 어느 시점부터 PM의 필요성이 두드러지면서 PM팀이 생겼어요. 현재 PM팀에는 저를 포함해 11명의 PM이 계시고요. 2019년 10월, 지그재그에서 Z결제라는 통합결제 서비스를 정식 론칭했는데, 저는 Z결제와 관련된 프로젝트 중 한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단디 : 아, 그럼 PM마다 시기별 task에 맞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겠네요. PM은 경험치가 쌓인 후 맡게 된 자리일 텐데, 입사 때 포지션은 어떤 직무였나요?
상진 : 입사는 마케터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서비스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유저는 여성인데, 저와 고객 페르소나 간의 거리감이 있다 보니 입사 2개월 차에 회사 제안으로 직무 전환이 자연스레 이뤄졌어요. 이후 다양한 업무에 투입됐고 PM이 된 건 2018년 말이네요.
단디 : 직무 변환 당시 마음은 어떠셨나요? 해온 일들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갭이 생기잖아요. 마케팅을 제대로 해볼 수 있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고려했을 수도 있고... 당시에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상진 : 저도 처음에는 바로 적응하긴 어려웠어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마케터가 되겠다는 마음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더라고요. 제가 선택한 회사고, 충분히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직무 전환이 되더라도 이 회사에서 성장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여러 부분을 고려한 다음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한 셈이죠.
단디 : 당시 상진 님에게 좋은 회사는 어떤 기준이었나요?
상진 : 첫 번째는 커머스라는 도메인에서 일하고 싶었고, 2번째는 스타트업이었으면 좋겠다, 3번째는 회사와 집이 가까워야 한다 였어요. 2번째는 이미 성장궤도에 오른 3~400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할 역량은 아직 없다고 판단했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회사를 찾으려고 했어요.
단디 : 저도 왕복 4시간 거리로 출퇴근할 때 삶의 질이 가장 낮았어요. 상진 님은 판단 기준이 아주 명료한 편이신데, 결정을 내릴 때 ‘자기 합리화는 아닌가?’ 같이 자기 의심을 해본 적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상진 : 자기 의심보다 오히려 자기 객관화를 했기 때문에 결정에 확신이 있었어요. ‘나 지금 이것밖에 안돼’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얼마만큼이고, 타인이나 회사가 바라보는 내가 어떤 수준인지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아주 중요해요. 물론 그 기준만 가지고 선택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객관화가 되어야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객관화는 제가 가장 잘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인데, 여전히 어렵기도 하네요.
단디 : 자기 객관화를 못하면 남일은 쉬워 보이는데 내 상황은 복잡해 보이잖아요. 게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약점도 인정한다는 거니까,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가능한 일 같아요.
상진 : 모든 사람이 일인자가 되고, 대표가 될 필요는 없잖아요. 사람마다 어느 정도 타고난 기질과 역량이 있을 거예요. 축구선수 메시 아시죠? 저는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에 ‘리그’라는 게 있어요. 리그마다 스타일이 있거든요.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인 건 맞는데 스페인에서만 뛴 선수예요. 아무리 메시처럼 훌륭한 선수라고 해도 영국에서 뛰었을 때 '지금과 똑같을 거다'라고 누구도 보장을 못할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빛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단디 : 리그... 와 닿네요. 상진 님을 처음으로 뵌 게 PPT 원데이 클래스였는데, 그때는 프리랜서셨던 거죠? 저는 상진 님이 이후로도 '스타강사'로 지내실 줄 알았어요. 준비한 자료나 눈빛을 보면 느껴지잖아요. '이 사람 진심이구나'하는 느낌이요. 근데 강사 생활을 접고, 알려지지 않은 커머스 서비스의 마케터라.... 이직이나 전직이 결과적으로 심플해 보여도, 그 변화를 만드는 게 개인의 삶에서는 엄청난 일이잖아요.
상진 : 네. 그때는 직전에 다니던 프레젠테이션 전문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었어요. 불러주는 곳도 많았고 저도 강의하는 거 정말 좋아했었죠. 지그재그에 조인할 때는 두 가지 정도 생각을 했어요. 콘텐츠는 달라지더라도 강사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겠다는 판단,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스타트업 조직에 들어가는 도전은 30대 초반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스스로 정했거든요.
단디 :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직전에 언급하신 리그라는 개념과 연결되나요? 그때도 명료한 자기 객관화가 됐던 걸까요? 시기마다 보이는 시야가 달랐을 텐데요.
상진 : 음, 이건 조금 더 옛날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요. 저는 공무원이신 아버지의 권유로 행정학을 전공했어요. 2학년 첫 학기 첫 수업을 듣는데, '아. 이거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겠구나. 내 인생의 방향과 다른 분야구나'하는 촉이 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공이랑 관련 없는 수업만 잔뜩 들었어요. 불어, 수화, 사랑의 의미, 북한 역사 이런 거요. (웃음) 그러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한 게 뭐였지 생각했는데 막연하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했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려면 뭘 해야지 하다가 찾은 게 프레젠테이션 연합 동아리였고, 그게 자연스럽게 직업까지 이어진 셈이죠.
근데 제가 강의할 때 즐거웠던 포인트는 '누군가를 가르친다'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스타트업도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매력을 느꼈어요.
단디 : 강사와 PM...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결국 일을 통해 에너지를 교류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시는 거군요. 언젠가 강사 버전 상진 님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별 그램 피드만 보면 일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시던데, 실제로 그러신 편인가요?
상진 : 지그재그에 합류했을 때 제가 32살이었어요. 아무래도 새로운 시작을 한 셈이니 남들보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좋게 말하면 열정인데,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스터디하러 나가고 그랬죠. 4년 동안은 일만 보고 지냈네요.
단디 : 일 욕심이 큰 만큼 마음고생도 하셨을 텐데... 상진 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인가요?
상진 : 작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업무량도 많았고,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삶에서 100이라는 에너지 중 95% 이상을 일에 쏟았는데, 준비한 일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흔들렸고 어려웠던 시기예요.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단디 : 지금 좋아지신 건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돼서 일까요?
상진 : 일 양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부분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특히 사람에 대해서요. 같은 사안이라도 부서마다 담당자마다 입장 차이가 있고, PM은 그걸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잖아요. 누군가와 이슈가 생긴다고 해서 상대가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라는 걸 배우고 여유를 찾는 시간들을 보낸 것 같아요. 의견 조율 자체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지만, 일을 일로 바라보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여유가 생겼어요.
단디 : 상진 님만의 균형 감각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네요. 가만히 조직을 들여다보면, 합의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적인 연대감이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하게 작용해요. 대체적으로 사람은 스스로 동의한 부분에 확실한 기여를 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상진 : 맞아요. 결정사항만 공유했을 때 일하는 사람이 책임감을 갖기는 어렵죠. 그래서 일할 때 동료에게 가장 감사한 순간이 이럴 때에요. A사안을 공유했을 때 담당자가 ‘그 일을 왜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 봐주시는 순간이요. 질문한다는 건, 일의 목적과 의미를 이해한다는 거고, 그분이 전문분야에서 더 깊게 고민하고 좋은 대안을 찾아주시겠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들여 한 커뮤니케이션은 모두에게 유익해요. 커뮤니케이션은 늘 노력하지만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에요.
단디 : 보통 퇴근하면 어떤 시간 보내세요? 일 말고 어떤 활동하실 때 가장 행복하신지 궁금해요.
상진 : 요즘은 산책할 때가 제일 좋아요. 특히 주말에 평범하게 산책하고 평범하게 카페 와서 이야기 나누고, 보고 싶은 전시 보고 그럴 때 제일 행복해요. 그래도 다행히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일은 아니네요. 운동도 시작했는데, 지금은 헬린이도 아니라서 헬린이 지망생 정도예요.
단디 : 몸도 마음도 밸런스 잡는 게 참 중요한데 어렵죠. 가만히 있는다고 '나다움'이 유지되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꾸준히 달려오셨는데, 만약 회사에서 안식년을 준다고 했을 때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신가요?
상진 : 결국 일 이야기이긴 한데, 커머스 분야에서 더 전문성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커요.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더 큰 형태의 조직은 어떻게 일이 굴러가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요. 그리고 여러 방면으로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단디 : 사람 공부가 결국 인생 공부겠네요. 사람에 대한 면역이 없어지면 아무런 판단이 안 되는 게 인생이니까요. 마음을 돌아볼 여유는 항상 둬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지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상진 : 우리가 무너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고, 언제나 또 올 수 있으니까요. 단지 그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죠. 그리고 누구에게나 가장 잘 맞는 리그가 있을 거예요. 저는 강의라는 리그에서 이미 가능성을 봤고, 지금은 커머스에서 또 다른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어요. 누구든 자신만의 리그를 찾으면 인생이 더 재밌어질 거라고 봐요.
에필로그
듣는 순간 오백만 대국민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지원자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소설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다. 각종 대외활동으로 스펙이 짱짱한 MZ세대 조차도 이 질문만큼은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별의별 성격 유형 테스트가 유행한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심리테스트 결과를 자소서 쓸 때 참고한다고. 가장 최근에 핫했던 SPTI 테스트(성격 유형을 스낵으로 알려주는 심리 테스트)는 출시 10일 차에 이용자 수가 920만 명에 달했다. 참고로 저는 민트 캔디..... 모르는 사람은 여기 링크
스스로를 안다는 건 자소설 쓰기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캐캐 묵은 속담이 결코 가벼이 지나칠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평생 함께 해온 나 자신을 옆에 두고 스스로에 대해 무지했던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있다면, 몸 담을 '리그'가 어디인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만큼 성장을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리그를 찾는다면 덜 아프게, 더 즐겁게 성장할 수 있을테다. 이렇게 오늘도 5년 전 그날처럼 인생 밑천을 얻어간다.
2020.9.19
상진 님과 성수동 카페 ore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