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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 Jun 14. 2022

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피곤에 절어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

우연히 러닝크루에 가입하게 됐다. '요즘 힘든 일이 있는데 뛰고 나면 좋더라'는 친구의 한 마디가 가슴에 날아와 꽂혔달까.


왕복 3시간 출퇴근러로서 산지 18개월 . 실은 최근에 어떤 날은 회사 근처 여인숙에 기어들어가 일단 몸을 뉘이고 싶단 생각까지 하게 됐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사노동도  내팽개치고 싶어졌다.  이상 이대로는  되는 상태에 도달한 셈이다. 내게 남은 체력이 얼마인지 아이폰 배터리처럼 눈으로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급속 충전과 방전 사이를 오갔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돌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러닝이라는 걸 시작하게 됐다. 내생에 뜀박질을 떠올려보면 학창 시절 체력검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뛴 게 전부이다. 그때도 사춘기의 묘한 반항심이 섞여있어서 뛰라는 선생님의 외침에도 살랑살랑 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보면 이해 안 되는 사춘기 감성. 성인이 된 이후로는 신호가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5미터 정도를 뛴 게 전부인데 그건 뛰었다 하기에 너무 초단거리니까 패스.


가끔 산책할 때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나와 다른 유형의 생명체를 마주친 기분이 들긴 했다. '와아~ 잘 뛴다' 감탄하면서 뒤돌아보곤 했지만 긴 여운을 남기진 않았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러닝 크루에 가입한 건 굉장한 우연인 셈이다.  



러닝 첫날.

솔직히 말하면 너무 무서웠다. 이름도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뛴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에버랜드 T 익스프레스도 이것보다는 덜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 쫄아있었다. 집에 몇 없는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나와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도색한 건장한 분들 앞에 서있자니 뛰다가 곧 나가떨어질 나의 미래가 보였달까. 너무 뒤처지면 같이 뛰는 분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어느 정도 빨리 뛰게 되는 걸까, 뛰다가 너무 힘들면 멈춰도 될까, 돌아와도 될까... 온갖 걱정을 하느라 다 같이 몸을 푸는데 쥐가 날 것 같았다. '저기서부터 뛰시죠'. 러닝 번개를 연 벙주님이 말씀하셨고, 크루 전체가 뛰기 시작했다. 이 날 나는 당연히 역시나 가장 늦게 도착했고,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입에서 피맛이 나는 것 같다며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러닝 한 달 차.

5월 한 달간 12회를 뛰었고, 총 58km를 평균 6'35'' 페이스로 뛰었다. 러닝 해본 이는 알겠지만, 엄청난 거리도, 엄청난 속도도 아니다. 그냥 12번 뛰셨군요. 하면 되는 기록이다. 체중이 드라마틱하게 빠진 것도 아니다. 대신 긴장감이 12분의 1로 줄었다. 이제 누가 뒤에서 뛰거나, 앞으로 뛰어가도 무섭지 않다. 걱정보다 페이스 느린 사람에게 관대하고, 인원이 많은 날엔 페이스 별로 그룹을 아예 분리해서 뛰기 때문에 압박감이 적게 뛸 수 있었다. 놀라운 건 어쨌든 나 같은 사람도 한 번에 5km를 뛴다는 사실이다. 심장과 폐가 태어난 이래 이만큼 풀가동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숨 차오르는 구간이 점점 지연되고 견딜만해진다는 게 느껴진다. 힘든 것과 별개로 러닝 하는 동안 기분은 무척 좋다. 일정한 속도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좋다. 그래서 앞으로 더 오래 길게 잘 뛰어보고 싶다.

러닝 한 달 이후, 지금

6월에 들어서자마자 5번을 뛰었다. 6월 6일 저녁에 뛰고부터는 7일을 쉬었다. 어디라고 특정하기 힘든 오른쪽 다리 전체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주일 쉬어도 아프면 병원을 가보기로 했고, 오늘이 그 1주일이 되는 날이라 병원을 들렀다. 골반이 살짝 왼쪽 방향으로 틀어진 게 문제의 시작점이었다. 거기에 무릎 슬개골이 오른쪽 바깥 방향으로 살짝 돌아가 있는 게 오른쪽 다리 통증의 근원지였다.


흑백 바탕에 하얗게 찍힌 슬개골 X-ray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몸이 틀어진 걸 바로잡겠다고 반대로 자신을 비틀고 있는 작은 슬개골이 새삼 안쓰럽고 기특했다. 내 몸에 슬개골 하나도 이렇게 진심이라니... 저런 슬개골을 위해서라도 나를 아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한 시간 동안 근막이완을 하고 나니 오늘 저녁엔 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이렇게 시작된 러닝. 밸런스만 잘 맞춘다면 오랫동안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길어진 출퇴근 시간에 투덜거릴 때보다, 남은 힘으로 뛰고 나니 더 상쾌하다.


스스로를 잘 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24시간을 놓고 보면 꽤 잘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힘겨운 출퇴근 길도 잘 버티고 있고 지금 회사 이후의 스텝도 무난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퇴근 후 뛴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뛰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뛰고 나면 덜 답답하고 조금 힘도 나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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