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비 <남매의 여름밤>
우리가 함께한 다정했던 여름밤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그러나 이 시절은 우리와 꿈같은 기억으로 내내 함께할 것이다.
여기 두 쌍의 남매가 있다. 아빠와 고모, 옥주와 동주. <남매의 여름밤>은 아이를 거쳐 어른이 된 남매와 아직 아이인 남매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감정과 끈끈한 시절을 상기시킨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이런 시절을 소환시킨다. 무더운 여름날 할아버지네 집 거실에서 먹던 수박, 2층 나무 계단의 삐걱삐걱 소리,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던 마루바닥의 촉감 같은 것들. 이것이 <남매의 여름밤>이 말하는 꿈같은 기억이며 기억같은 꿈이다.
두 남매의 여름밤은 코 끝이 시렵기도 다정하기도 하다. 이는 모두 저마다의 괴로움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옥주는 동주가 자기의 모기장에 들어오려고 해서, 동주가 자기 몰래 혼자 엄마를 만나고 와서, 남자애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서, 쌍꺼풀이 없어서, 아빠가 파는 운동화가 짝퉁이라서 등의 이유로 괴롭다. 동주는 옥주가 모기장 자리 한편을 내어주지 않아서, 옥주가 2층 계단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엄마를 못 만나게 해서 등으로 이유로 옥주에게 서운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옥주와 잘 지낸다. 반면 아빠와 고모 남매는 보다 현실적인 괴로움을 가진다. 아빠는 이혼하고 돈이 없어서, 하려는 일마다 잘 안되어서 괴롭고 고모는 남편과 말이 안 통해서, 오빠가 아버지의 집을 혼자서 가질까 봐서 괴롭다.
저마다의 괴로움으로 초라해져도 좋은 순간들이 두 남매에게 깃든다. 함께 할아버지의 생일 촛불을 불어서, 할아버지가 모자를 좋아해줘서, 동주의 춤이 웃겨서, 알고보니 방학이어서, 함께 슈퍼 앞 평상에서 오징어를 구워 먹어서, 함께 할아버지의 빈소를 지켜서. 혼자이면 괴롭지만 함께면 웃을 수 있던 순간들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 각자는 괴로움 속에 살지만 이를 망각시켜주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곁을 내어주는 이들과의 기억 덕분에 다시 살아간다.
아빠와 고모 남매도 옥주와 동주 같은 시절을 지나왔다. 자전거를 두고 싸우다 화해하던 시절, 둘이 남아 집을 지키던 시절 그리고 내 방 자리의 한편을 내어줄 수 있던 시절을 지나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병원에 가는 지금, 함께 아버지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지금, 함께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는 지금에 와있다.
옥주와 동주 남매도 “별일 아니야. 올라가 있어.”라고 말할 줄 아는 아빠와 고모 같은 남매로 자랄 것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행복했던 그 시간을 되새기며 이 시절을 통과할 것이고, 이제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했지만 이내 사라져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을 겪으며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옥주는 비로소 동주에게 모기장 자리 한편을 내어준다. 옥주는 동주와 함께여서 어른들이 없어도 2층 양옥집을 지킬 수 있었고, 배고픈 저녁에 동주와 함께여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아빠가 팔던 신발이 사실 짝퉁이었음을 잠시 망각할 수 있었고, 쌍꺼풀이 없는 자신의 눈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다정했던 여름밤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그러나 이 시절은 우리와 꿈같은 기억으로 내내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