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도시

에드워드 양 <공포분자>

by 마르코
소설가 주울분은 꿈에서 깨고 토악질을 하지만 아무런 토사물도 나오지 않는다. 환상 속에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 이것이 에드워드 양이 바라본 도시이다.


공포분자는 누구인가. 하나인가, 모두인가. <공포분자>에는 허구를 쫓는 인물로 사진가와 소설가가 나온다. 두 인물은 모두 허구를 창작하는 예술가다. 사진가는 프레임안에 인물을 가둬 그 안에 허구를 창작하고 소설가는 페이지안에 이야기를 가둬 그 안에서 허구를 창작해낸다. 또 다른 허구를 설계한 인물도 있다. 슈안, 그녀는 장난 전화를 통해 자신이 꾸민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슈안이 창작한 허구는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사진가와 소설가의 허구와 약간은 다르게 보인다. 이렇듯 <공포분자>는 인물들이 창작으로 말미암은 환상을 구축하지만 모두 깨지고 마는 메커니즘을 따른다.



사진가 창은 언뜻 들으면 총소리 같은 카메라 셔터 소리를 내며 이미지에 ‘집착하는’ 첫 번째 공포분자이다. 창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절룩거리는 슈안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은 슈안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그 후 창은 연인과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총격전을 벌이던 도박장을 암실로 꾸민다. 암실 벽에 자신이 찍은 슈안의 사진을 걸어두고 검붉은 조명을 비추며 이를 현실과 분리된 ‘환상’으로 꾸며낸다. 그러다 슈안의 장난 전화로 인해 주울분이 창의 공간에 방문하게 되고 창은 슈안의 장난을 알게 된다. 그러나 슈안이 자신의 암실에 나타나자 창은 당장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환상 속의 그녀를 위해 진실을 묻어둔다. 그러나 창의 환상은 슈안이 훔친 카메라를 문 앞에 두고 연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보고는 깨진다.


소설가 주울분은 자신의 창작을 위해 현실을 ‘착취하는’ 두 번째 공포분자이다. 그녀는 글을 쓰고 싶지만 한정된 소재와 자신의 글을 한 번도 읽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질려있다. 밤새 글을 써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지만 쓸 만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불현듯 그녀에게 영감을 준 것은 어느 날 우연히 걸려온 전화 한 통이다. 전화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리고 그 전화를 통해 주울분은 쓰고 싶은 소재를 찾고 집을 뛰쳐나가 글을 쓴다. 주울분은 매너리즘에 빠진 결혼 생활과 불현듯 자신에게 찾아온 사건을 조합하여 소설을 쓰고 작가로 성공한다. 이렇게만 보면 주울분은 다른 공포분자들과 다르게 환상(작가로 성공)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울분의 대사 중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어..’라는 부분을 보아 남편 이립중과의 관계 회복과 가정 유지에 대한 환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울분과 이립중의 관계가 비극으로 치닫게 되며 주울분의 환상 역시 깨지고 만다.

혼혈소녀 슈안은 관심을 ‘바라던’ 세 번째 공포분자이다. 다리를 다치고 집안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던 슈안은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번호를 골라 장난 전화를 건다. 하필이면 무작위로 걸린 집이 부부관계가 소홀했던 소설가 주울분네 집이었다. 슈안의 전화는 다분한 악의나 복수가 담긴 것이 아닌 ‘장난’전화였지만 그 이면엔 ‘타인의 관심’이라는 환상이 있다. 장난전화는 직간접적으로 여러 인물에게 긍부정적인 혼란을 일으키지만 이를 통해 슈안은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룬다. 그러나 바라던 관심도 잠시일 뿐 슈안은 새로운 일탈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날 뿐이다. 결국 슈안의 환상 역시 충족되지 못한다.

주울분의 남편인 이립중은 ‘멍청한’ 네 번째 공포분자이다. 이립중은 아내 주울분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오직 승진과 성공에만 목숨을 건다. 이는 전형적인 기성세대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인물로 보여진다. 이립중은 승진을 앞두고 성공의 가도를 달릴 환상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승진과 아내 모두를 잃게 된다. 만약 이립중이 주울분이 내는 총성에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주었더라면 (슈안의 장난 전화가 있었더라도) 자신에게 향하는 비극의 총알을 피할 순 있었을 것이다. 비로소 주울분의 총성을 알아챘지만 이미 그 총알은 이립중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히기 직전이었다.


<공포분자>는 빛의 단절을 통해 인물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사진가 창의 ‘환상’ 자체인 암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빛을 차단하고 오직 검붉은 조명만을 가졌다. 이때 이 조명은 창에 의해 설치된 인위적인 것이고 슈안과의 관계 역시 창에 의해 구축된 환상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슈안이 창의 암실에 방문한 날 밤 비로소 둘은 한 공간에 머물지만 그림자에 의해 서로의 표정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다음날 슈안이 창의 카메라를 훔쳐 자신의 연인과 함께 도망가고 암실에는 창만 남겨진다.

주울분과 이립중의 관계는 이미 단절된 상태로 보인다. 화장실에 있는 이립중과 화장실 문 옆의 주울분이 동시에 잡히는 장면에서 둘은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다. 이립중이 있는 화장실은 조명을 가지지만 머리가 잘린 몸통만 보일 뿐이고 화장실 문 옆을 지키고 있는 주울분은 그림자처럼 실루엣만 보일 뿐 표정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둘은 화장실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세계에 이입하지 않고 있다.

에드워드 양이 바라본 도시는 형체 없는 환상과 같다. 급격한 근대화와 도시화로 말미암아 단숨에 환상에 도착한 것 같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이는 영화의 엔딩에서 극대화된다. 소설가 주울분은 꿈에서 깨고 토악질을 하지만 아무런 토사물도 나오지 않는다. 환상 속에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 이것이 에드워드 양이 바라본 도시이다.


결국 진짜 공포분자는 이러한 환상을 꿈꾸게 한 당시 시대상 자체이다. 근대화로 도시는 외적인 환상 세계에 도착했지만 도시의 구성원들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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