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의 아이들>을 읽고

by 윤아진

<모래밭의 아이들>을 읽고 2011.05.28


“선생님은 어쩐지 선생님 같지 않아요.”


슬프고 불행한 말이다. 아이들 마음에 선생님이란 의미가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지돼 있는지 고민해야 할 말이다.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선생님 같아야 하는데, 그 선생님다운 선생님을 만나기가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직 교사는 물론, 부모와 모든 어른들이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 될, 참으로 심각한 현상이다.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공교육에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는 학부모로서 현 교육의 모습을 반영하는 아이들의 간절함이 그 말 속에 배어 있다.


교사의 대부분은 니시 분페이의 말대로 ‘모범답안’을 가지고, 학습지도는 물론 인성지도까지 하려든다. 사람은 다 다르다. 생김새가 다르듯 마음 색깔도 하나같이 다른 빛이다. 준 선생은 학생들을 만나기로 한 날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이 ‘선입견을 갖고 아이들을 보지 말 것’이라 했다. 그래서 전임교사에게 아이들의 신상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다. 나름의 전인교육을 지향하던 나조차도 수많은 기존 관념 속에 붙잡혀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 장면이었다.


3학년 3반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반으로 모든 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렵고 귀찮다는 이유로 임시교사이자 신입교사인 준 선생에게 담임으로 맡겨졌다. 그런데 왜 준 선생과 아이들은 서로 마찰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변한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만, 현실에 억눌려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준 선생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아이들의 가슴과 눈빛으로 대화를 하려 했다. 바로 그거였다. 아이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함께 교감할 선생님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체육시간에 기존 준비운동이 따분하다는 친구들을 위해 에비스는 스스로 나서서 자기가 배운 요가 동작을 선 보였다. 친구들은 흥미롭게 따라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교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선생님다울까?나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에비스 동작을 흐뭇한 미소로 따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이들 반응은 어땠을까? 아직 성숙되어가고 있는 어린 가슴의 그들은 반항을 하고 있지만,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을 무지무지 받고 싶어하는 영혼들이다. 아이들은 에비스와 선생님의 동작을 번갈아 보며 못한다고 놀리면서도, 선생님의 서툰 몸짓에 친근한 교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모습이 교사와 함께 가는 소통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사도 학생들보다 먼저 태어나 세상 경험을 조금 더 많이 했다 뿐이지부족한 인간이다. 오히려 깨끗한 감성은 어느 새 잃어 버려 아이들에게 다시 배워야 한다. 교사가 좀 더 가진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고 아이들의 투명한 마음과 순수한 외침들을 함께 공유하여 간다면 이미 교육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교감의 교육은 인간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그 기초를 우습게 알고 뛰어넘으려 한다. 마음만 급해져 빨리 빨리 결과를 얻으려 한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고 그럴 듯한 줄기와 잎만 대충 심으려는 꼴이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한 그 나무는 머지않아 마른 가지로만 남을 텐데도.......


반항아인 간바라 미치코의 실체는 비뚤어진 교사와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과 행동들이 어떤 것이란 것도 모르면서 교사의 자리에 선 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선생님 앞에서 할 말을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지만 아이들 마음에선 구분할 줄 안다.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들을.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기억되어질 이미지가 ‘선생님’이 될지‘선생’이 될지 생각하는 교사가 많아지길 바란다. 나또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많은 선생님들의 잘잘못의 특징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교사는 아이들의 보여지지 않는 그 마음자리들을 결코 무시하고 간과해선 안된다. 교사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 마디는 아이들에게 평생, 가슴에 상처의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상기해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말을 학생의 글을 통해 비판한 부분도 놀라웠다. 평범한 시각으로 볼 때는 ‘가르침이란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한 말인데,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한방 맞은 기분으로 되풀이해 읽어보았다. 그랬다.


그건 지배자 입장에서의 말이었다. 우리는 분노를 삭이라 한다. 분노보다 냉정한 이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인간에게 분노는 정의를 지켜내는 원동력이다. 위인들은 다 존경해야 하고 존경받을 사람이라 배우고 인식해온 나에게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하는 눈을 뜨게 했다는 신선한 깨달음이다.


젊은 시게노부 선생의 ‘교사라는 직업에는 인간을 성직자로 만들어버리는 마약과 같은 구석이 잠재해 있다. 자유나 평화를 입에 올리면서 수십 명이나 되는 학생들 앞에 섰을 때의 은밀한 우월감, 인간으로서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고 학생들을 타이를 때의 숨기기 힘든 우쭐함,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인간의 약점이다.’ ‘자신은 학생들보다 한 단계 위에 서 있는 인간이니까 명령을 해도 괜찮다는 우쭐한 생각만은 갖지 말자’라는 말은 교사의 진정한 자리를 일깨운다. 아이들을 대등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대할 때만이 아이들을 교사의 품에 안을 수 있다.


슬픈 일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품고 싶어하는 교사들을 현 교육현장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건 물론 교사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 교육이 묵은 옷을 벗어버리지 않는 한, 아이와 교사, 교사와 학교, 학교와 학부모의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은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선생님 같은 분들이 존재하는 한, 선생님의 글들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은 한, 열린 교육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그만큼 소망을 품고 있기에 언젠가 새 옷을 갈아입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준 선생이 간바라 미치코에게 다가가려 한 이유,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갖고 있는 친구,나는 그런 친구가 필요했구나.’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해나가려는 깨달음과 함께 독자에게도 생각의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모래밭의 아이들’은 진지하게 삶과 교육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책의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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