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루 24번지>를 읽고

by 윤아진


책을 읽으며 시작부터 중반에 올 때까지도 선뜻 스토리에 별 감흥이 없었다. 도입부터 큰 줄기의 설명도 없이 시작되는 종잡을 수 없는 사건 전개와 너무 많은 사소한 주변 배경 묘사들로 구성이 산만하여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다 작가 손서은의 행적을 찾아보며 구체적 묘사들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그리스에서 3개월간 불법체류하며 소통하거나 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민수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민수 아빠, 요나, 레오니스, 콘스탄티노스 등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어린 나이에 미혼부가 된 민수 아빠 경호와 요나, 경호는 비록 민수를 보육원에 맡겼지만 5년 만에 찾아와 함께 하고 있고, 요나는 백인 여자에게 딸 줄리아와 함께 버려졌지만 갓난아기 딸을 가슴에 안고, 등에 달고 짝퉁 가방을 팔며 불안한 삶을 씩씩하게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레오니스는 보육원에서 지내다 16년 만에, 이미 사망한 아빠 가족을 찾아오고, 바소 부인과 디미트리, 마르타 의붓누이들에게는 환영을 받지만 아빠랑 똑 닮은 미남 얼굴의 의붓형제인 콘스탄티노스는 레오니스를 거부하며 가출한다.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버려진 결핍의 상처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라기보다 형 같은 34살의 민수 아빠는 이해타산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종종 민수의 속을 태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민수는 불안한 상처를 안고 있지만 인물들 중에서 제법 중심을 잡고 있는 15세 소년이다. 민수의 대범한 냉철함은 미스 바부시스 선생이 자국의 그리스가 시민 정부를 세웠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의 분단을 비하할 때 민수의 대답에서 드러난다.
“왜 오모니아 광장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을까요? 광장의 이름이 의견의 일치인데도요,”
“민주주의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듣는 데서 출발하겠지요. 그리스 정부는 도무지 시민의 말을 듣지 않잖아 요.”
“왜 하느님의 자손인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을 한 형제로 끌어안지 못하죠? 왜 미국은 끊임없이 중동에 전쟁을 일으킬까요? 어쩌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전 유럽이 안아야 할 공동의 문제가 되었는지, 그 답을 선생님은 아 십니까? 한국의 분단 문제도 결국 같은 연결선 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서 개별적이지 않다는 거죠.”
이를 통해 민수가 어리지만 사회적‧세계적‧역사적 시야가 결코 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6살에 버려졌던 민수의 기억은 자꾸 유나의 딸 줄리아에 대한 관심으로 향한다. 불법 노점상 단속에 쫓겨 도망가며 떨어뜨린 요나의 가방을 안고 위험을 무릅쓰고도 뺏기지 않으려는 이유가 ‘아기 때문’이라고 한다. 줄리아가 잠시라도 자신처럼 버려지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아빠는 내가 여섯 살 때 나를 보육원에 버렸어. 그때까진 할머니도 살아 계셨지. 너 혼자선 6년도 못 버틸 거야. 네 꼴을 좀 봐. 쓰레기통이나 뒤지면서 애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네 몸뚱이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걸. 괜한 고생 집어치우고 네 삶이나 살아.”
“살고 있어.”
“웃기시네. 이게 제대로 살고 있는 거냐?”
“살고 있다고. 제대로 사는지 어쩐지는 잘 몰라~” “친구, 넌 너무 감상적이거나 비관적인 것 같아. 지난 일은 잊어. 머리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그냥 사는 거야. 낮에는 오모아 시장통에서 단속 경찰관한테 쫓기지만 감시 가 소홀한 저녁에는 신타그마 광장에 나만의 가게를 차리지. 손님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 얻어터 질 때도 있지만 안 얻어터지는 날이 더 많아. 쓰레기통에도 좋은 건 있지. 아까는 호텔 쓰레기통에서 손도 안 댄 케이크를 상자째로 건졌어. 신이 나를 위해 남겨 두신 거였지. 난 엄숙하게 기도를 드리고 감사히 케이크를 잘랐어. 기가 막히게 달았지. 요나는 그 순간 행복했어. 조금 남겨 놨는데 민수, 맛볼래?”
그딴 거 안먹겠다던 민수는 케이크를 먹으며 성난 세포들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고 온몸의 근육이 기분 좋은 휘파람을 부는 전율을 느꼈다.
“그냥 산다고 막사는 건 아니라고, 친구. 난 쓰레기통에서도 좋은 것만 가져와.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야지.”
친구, 그냥 사는 거야
요나는 줄리아를 버리지 않고 품에서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요나는 줄리아를 그저 아빠로서의 책임감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함이다. 요나처럼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막 살아 내는 거 외는 답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살아 내는 것이므로.

공원에서 잠을 청하던 그들은 깡패들에게 붙들려 맞게 되고 민수는 위험 속에서 줄리아를 위해 요나가 도망치도록 유도해 혼자 남는다.
욕설, 분노,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이 피부를 찌른다. ~~~왜 이들은 이토록 분노하는 걸까. 내가 뭘 어쨌길래. 집을 나온 것뿐이었어. 하룻밤 공원에서 자려던 것뿐이었어. 왜? 단단한 공처럼 말려있던 몸이 후드득 풀어진다. 끈적한 피가 흥건히 팔을 적신다. ~~~~~
“그만둬! 도와주세요! 사람이 죽어요! 제발!” ~~~~~
저만치서 겁에 질린 얼굴이 조각상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다. 세상에! 레오니스, 너도 여기서 자고 있었던 거야?
“도망가! 병신! 도망가라고!”
“시, 신고했어! 이제 당신들 모두 끝장이야!”
무섭고 두렵지만 친구를 택한 레오니스 덕분에,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우정 덕분에 그들은 몸은 다쳤지만 함께 살았다.
“너도 봤어야 돼. 네가 그 장난감 칼을 내리꽂자마자 놈들이 혼비백산하고 도망가는데, 진짜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 그런 무시무시한 칼은 어디서 난 거야?”
“장난감 칼? 그러니까…… 아무도 안 죽은 거야?”
“그걸로는 스펀지케이크도 자를 수 없었을 걸. 사실 칼보단 네 고함이 더 무시무시했지. 정말 미치광이 같았거든. 마침 경찰이 나타났고.”
중요한 것은 맞고 있는 친구를 지키겠다는 간절함 가득한 민수의 포효였다. 칼은 거들었을 뿐.
민수와 레오니스는 서로에게서 같은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불법 노점상들이 깨끗이 사라진 도로를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덕분에 넓어진 도로는 걷기 편했지만 노점상 없는 길은 심심했다. 물감 세트에서 중요한 색깔만 쏙 빠져 버린 것 같다.’ 작가는 노점상을 도로의 치워야 할 거추장스런 무쓸모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닌 있어야 할 쓸모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삶을 지켜내가기 위한 그들의 삶을 이어갈 중요한 수단이며 현장이기 때문이다.

서로 섞이지 못할 것 같았던 각각의 캐릭터들은 어느새 서로를 보듬는 서로의 자장이 되어 준다. 그 중심에는 민수가 있었고 자신이 힘들면서도 측은지심이 몸에 밴 아빠 경호가 있었다. 치유될 것 같지 않던 민수의 상처와 방황, 반항들도 요나와 줄리아, 레오니스, 콘스탄티노스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함께함으로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하며 치유하는 힘을 얻는다.
테오도루 24번지 빈민가의 외로운 영혼들은 형제같은 우정을 나누며 때로 부딪치면서도, 서로를 감싸는 따뜻한 마음만은 안고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따뜻한 인간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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