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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Oct 22. 2019

언제까지 팬심으로 버틸 생각인지

아이폰 11 프로 출시와 디자인 변천사


전자기기를 살 때 꼭 지키는 몇 가지 수칙이 있다. 우선 사고자 하는 기기의 가장 최신 기종을 살 것. 또한 사고자 하는 기기 중 가장 ‘예쁜’ 것을 살 것. 이 두 가지는 필자의 소비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이다.




최초로 구매한 애플의 스마트폰은 아이폰5 였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지만 낯선 ios가 탑재되어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안드로이드 os) 보다 제약이 많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적응하고 난 후, 뭔가에 홀린 듯 줄곧 애플의 스마트폰만을 고수했다. 손이 작은 내게도 한 손에 다 들어오는 적절한 사이즈와 모서리를 제외하곤 예쁘게 각이 진 디자인이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다. 사실 아이폰5의 디자인은 당시 모두의 취향에 부합했을 것이다. '애플=디자인'이라는 공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라 할 만하다. 필자의 소비 법칙 두 가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제품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필자는 애플과 아이폰에 눈이 멀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폰 6로 교체를 감행했다. 기존의 애플 제품에 비해 사이즈가 커졌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각진 곳 없이 매끈하게 디자인된 것도 큰 차이점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점부터 아이폰 디자인에 대한 혹평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5가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인지, 아이폰6의 일명 ‘절연 띠’가 그려진 뒷면에 특히 많은 말들이 오갔다. 또한 전작과 달리 매끈하지 않고 카메라가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어 ‘카툭튀’라는 은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사진 제공=<https://www.apple.com/kr/iphone/compare/>


뒤이어 출시된 아이폰7과 아이폰8 제품 역시 아이폰6와 비슷한 크기와 디자인을 고수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아이폰7의 매트 블랙 컬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뒷면이 아이폰5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아이폰6에는 없던 올 블랙 컬러가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때부터 큰 액정화면을 강점으로 내민 ‘플러스’ 모델도 함께 출시되었다.






애플은 아이폰X을 기점으로 기존에 고수하던 크기와 디자인을 완전히 탈피하고자 했다. 베젤리스 디자인을 위해 노치 디자인 (일명 ‘M자 탈모') 형태로 액정을 변형했고, 듀얼 카메라를 장착했다. 아이폰8과 동일하게 뒷면은 유리 소재로 제작되었지만 Touch ID가 아닌 Face ID가 탑재되었다는 것이 실로 오랜만에 혁신이라 불릴 만한 큰 변화였다.


사진 제공=<https://www.apple.com/kr/iphone/compare/>


필자가 아이폰의 디자인 변천사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출시된 아이폰 11과 아이폰 11 Pro 때문이다. 아이폰X이 출시되었을 때의 반응도 그리 좋진 않았지만 아이폰11과 11 Pro를 향한 실망감은 그에 몇 배는 되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해야 하나. 실제 애플 이벤트 현장에 있던 분들(그들의 당황스러움이 화면을 뚫고 느껴졌다.)과 먼 거리에서 필자와 같이 유심히 프레젠테이션을 감상하던 사람들 모두 상당히 당황했다. 이벤트 이전부터 유출되어 진위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그 ‘구린 디자인’이 실제가 되다니. 당시 나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혁신이라 할 만한 추가적인 기술의 발전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외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 달 여의 시간이 흐른 후, 한바탕 아이폰 11 pro의 ‘인덕션 카메라’ 소동이 벌어졌지만 예상과는 달리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구매를 위해 해외여행을 불사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 고백하자면 필자는 아이폰11이 최초로 공개되던 당시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구린 디자인’이라며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그 트윗은 가볍게 백 단위의 리트윗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하지만 곧장 우스운 꼴이 됐다. 단 하루 만에 그 말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변덕스럽게도 '보다 보니 나름의 매력이 느껴진 탓'이었다. 물론 구리다는 트윗의 열렬하고 뜨거운 반응과 달리, 예뻐 보인다는 나의 트윗은 모두가 가볍게 무시했다.





필자는 더 이상 디자인만으로 애플의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애플의 브랜드 가치와 그동안 아이폰과 함께 한 수많은 세월을 고려한다. ‘애플의 디자인에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아이폰 11 pro의 최초 공개 당시, 나는 매우 이성적이었다. 확실히 많은 이들의 불호를 부르는 디자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생각을 바꾸어 예쁘지 않은 디자인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애플에 대한 나의 충성심을 확인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사진 제공=<https://www.apple.com/kr/iphone/compare/>



예쁜 디자인이란 매우 주관적이다. 보는 이의 미적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애플의 아이폰11 pro 출시를 통해 이를 (굳이) 몸소 깨달았다. ‘구리다’며 혹평을 받은 디자인도 누군가에겐 달리 보일 수 있고, 당황스럽게도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예뻐 보일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과 더불어 10년 가까이 이어진 나의 애플을 향한 사랑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임을 확인했고, 놀랍게도 (또는 어이없게도) 곧 국내에 정식 발매될 아이폰11 pro를 대단히 기대하고 있다.



전자기기를 살 때 필자가 가장 고려하는 두 가지, 최신 제품이며 예쁜 디자인이어야 할 것.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 거라 단언했던 최근의 아이폰은 어느새 갖고 싶은 제품 1순위가 되어 있다. 오늘따라 그 사실이 묘하게 신경 쓰인다.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절대 놓지 못하는 필자와 필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해서든 매력을 찾아내고 구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애플만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앞다투어 애플의 신제품을 구매하려 하고 이에 경쟁심마저 느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끝으로, 사람들의 이러한 ‘팬심’을 이용해 혁신적인 변화와 뚜렷한 개선 없이 가격만 올라가는 신제품들이 언제까지 먹힐까,에 대해서도 깊게 고심해본다. 생각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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