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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being Aug 14. 2019

내 시계를 봐요

홍콩의 청킹맨션 속  아비정전과 중경삼림

내 시계를 봐요. 

3시

아비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여자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 순간부터 그녀(수리진, 장만옥)는 그(아비, 장국영)가 내민 순간에 갇힌다. 

언제나 3시만 되면 그를 기다리게 되고 그녀는 그 순간부터 순간에 잠식당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친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김윤아 노래 가삿말처럼

장만옥 그녀의 사랑은 점점 깨지 못할 긴 잠에 빠져든다. 


나를 길들여줘...

라고 부탁하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가 말한다. 

되도록이면 같은 시간에 오면 좋을 거야. 

그래서 네가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될지 모르니까 안절부절못하겠지. 


3시가 되기 전부터 그녀는 손목시계의 초침에 집중한다. 

정확히 3시. 그의 발자국 소리는  그녀의 일상을 안정시키지만

들리지 않는 발자국은 그녀의 일상은 불안하게 한다.

홍콩 밤거리를 걸으면 아비의 3시라는 그 순간을 알 것 같았고, 그 순간에 잠식된 수리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묘한 기대감이랄까?

긴 새벽, 오지 않을 아침, 불야성, 불안 등등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도시 홍콩

오래전부터 홍콩의 밤거리가 버킷 리스트였다.. 

그래서 중경삼림의 금발머리 임청하처럼 바바리코트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통조림 유통기한에 불안해하는 금성무를 만날 것 같았다. 

(내가 선글라스를 밤이고 새벽이고 애착하는 이유가 중경삼림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풍경보에 두 시간이나 연착되어 저녁에서야 도착한 홍콩의 첫밤은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AEL 공항철도를 타고  침사 무이 스트리트로 향한 길목은 온통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높은 사다리 같은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미어져 나오는 명품 건물들마다에는 아직도 양에 차지 않는다는 듯 수천 도의 용광로 불길처럼 강렬한 욕망을 서로 뽐을  낸다. 아! 홍콩이구나! 

지인으로부터 딤섬과 칭다오 한잔을 초대받았고,

이제야 사위어가는 거리를 해준과 나는 2시간에 걸쳐 걸었다. 

밤이 깊어가는 홍콩 주변 거리는 대부분 상점 문이 닫혔다.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홍콩 시위 때문이라고 한다. 

공항에서 보여주던 것과는 달리 되려 한적한 거리를 걷자니 여유로웠다. 

아직 닫지 않은 상점을 기웃거리고, 뿜어져 나오는 

열기의 골목을 지나오면서 홍콩을 음미했다. 

이 느낌이었을까? 내가 기대하고 설레었던 것이?

뭔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3박 4일이라고는 하지만 꽉 찬 2박 4일 일정의 홍콩 여행은

도착한 첫날 걸었던 그 순간이 가장 흥미로웠다. 

빌딩이 숲을 이룬 국제도시 홍콩의 여름은 찌는 듯 덥다고 하는데 다행인 것은 태풍이 지나간 탓에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견딜만했다 하지만 빌딩 숲의 더위를 이겨낼 재간은 시간마다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더우면 땀을 식히고 다시 거리로 나오고...

그렇게 끝도 없는 레벨 23으로 기록된 스트리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랐고  홍콩을 내려다볼 수 있는 홍콩 PEAK에 올라  오후 전경(홍콩 하면 야경이지만)을 훑어봤다. 

넓고 푸른 바다로 에워싸인 홍콩 빌딩들.

넘실대는 물은 공간을 풍요롭게 하며 한층 여유 있어 보이게 한다. 물의 풍요로움을 충분히 영향받은 탓인 게 홍콩이라는 나라는 계속 건설될 것 만 같았다. 

홍콩 드림이랄까,  풍요 속 빈곤!

다 본 것 같다. 이제 더 갈 데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이 높은 곳에서 바람 쐬고 선텐 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느릿느릿 걸었던 길은 뜨거운 아스팔트였고, 잘 구획된 골목에 끊임없이 솟아있는 빌딩 사이를 거침 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곳 어딘가에  아비도, 수리진도, 바바리도, 경찰 223도 있을 텐데--- 대낮의 뜨거움은 그들의 그림자를  저 깊은 골목에 감추었는지  도통 찾을 길이 없었다. 그저 이방인처럼  나 몰라라 할 뿐이다. 

그들의 냄새도, 그들의 속살도, 그들의 고단함도,

그들의 쾌쾌함도, 그들의 무력함도 알아볼 수 없게 뜨거운 햇살에 반사된 유리가 무심한 나를 비춰줄 뿐이다. 

홍콩섬을 건너가는 크루즈 주변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어느새 바다로  일몰이 내려온다. 

사람들은 분주히 돌고 돈다. 

까만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골목마다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EVERYDAY BLACK SHIRT!


중경삼림(왕가위 감독)은 국제도시 홍콩에 사는 사람들의 활기와  그 속에 숨은 1997년, 곧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는 홍콩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담고 있는데 2019년 현재는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1 국가 2 체제라는 특이한 국가시스템으로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력하게 받고 있는데 때마침, 중국이 포함된 범죄자 인도조약을 반대하는 시위 등등이 날로 거세지면서 반중 민주인사들에 대한 중국 소환을 우려하는 시위의 양상이 증폭되고 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점의 홍콩이지만 이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듯 

국제도시인만큼 명품 브랜드로 치장한 건물마다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은 뜨거운 반도 홍콩의  36도 이상의 열기보다 더 강렬하게 뿜어내고 있다.

게다가 너무 흥미로운 것은 사진을 뒤적이다 알게 된 사실인데 

3박 4일 여정중 마지막 숙소가 청킹맨션 내에 있는 호스텔이었는데 이 청킹맨션 안팎이 중경삼림 영화의 무대라는 점이다. 임청하와 금성무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곳이 홍콩  KOOWLOON 스트리트에 있는 값싼 숙박시설, 가게, 인도 음식점이 모여 있는 퇴락한 지역인 청킹 맨션 안팎이 무대라고 하는데 22년 전 영화 속 모습이나 2019년 오늘의 모습이나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한평 남짓한 샵마다에는 인도, 네팔, 필리핀, 쿠웨이 등등 향신료 가득한 식당과 싸구려 샵,  환전 소등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어두컴컴한 뒷골목에는 오물 냄새로 질척거리고 청킹맨션 주변에는 짝퉁 물건 등을 파는 이국인들이 오고 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허연이를 드러내며 호객을 하고 있는 점이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강력한 향신료 냄새에 홀려 해준은 1층 샵 코너에 몰려있는 인도 네팔 식당으로 끌려가듯 들어가며 탄투리 치킨, 꼬치 등등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인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터번 두른 남자들 사이에 한국 여자 2명이 아랑곳하지 않고 와구와구 먹어댄다. 홍콩이라는 나라는 술을 판매하지도 잘 마시지도 않는 탓인지 맥주를 주문했을 때는 비밀병기처럼 노란 봉투에 담긴 맥주캔을 건네주었다. 힐끔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과 우리의 웃음이 서로 부딪히지지만 결국 탄투리 치킨의 맛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 너무 좋다. 이 기분 얼마만이니?

연신 감탄하는 해준은 한껏 상기되어 있다. 

홍콩 속 인도라니! 너무 좋은데!

그러게 이게 얼마만이니?

다음 여행은 인도로 갈까?

우린 홍콩보다 인도가 더 어울린다. 그렇지?


음식의 향신료보다 더 강한 사람 냄새 때문에 오래 앉아 있질 못했다. 물론 야외였다면 달랐겠지만 밀집되어 있는 샵에서 오만가지 섞여 있는 냄새라니! 더 군다니 번화가 홍콩 속에 청킹맨션은 도드라지게 인도스러웠다. 

중경삼림 영화의 영어 제목이〈Chungking Express>인걸 미처 눈치채지 못한 탓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게 못내 아쉬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임청하의 동선대로 움직이며 임청하가 되어 보았을 것인데!

어수선한 사람들과 냄새나는 골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게 내내 아쉬울 것 같다.

그렇게 임청하를 놓치고 금성무를 놓치고 아비를 놓치고 수라진을 놓쳐버린 순간을 또 언젠가 만날까?


이렇게 홍콩은 순간이라는 순간을 인식하게 해 준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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